‘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처럼 외국어와 모국어 사이에는 근본적인 간극이 있다. 하지만 시인 김정환 씨는 끊임없이 이 틈을 좁히려 시도한다. 셰익스피어 전집 40권(아침이슬)을 번역 중인 그가 이번엔 ‘문학동네 세계 시인 전집’ 전권 번역에 나섰다. 셰익스피어 전집은 23권까지 낸 상태. 대역사가 끝나기도 전에 또 ‘큰일’을 벌인 것이다.
이번 전집은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그리스어, 폴란드어 등 5개 언어권 시인 12명의 시 전편을 담는 기획이다. 지난해 12월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1995년 노벨문학상) 전집을 시작으로 최근 영국 시인 필립 라킨의 전집을 내놨다. 필립 라킨은 조지 오웰을 제치고 ‘영국의 가장 위대한 전후 문인’ 1위(2008년 타임스)에 뽑힌 시인이다.
2009년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를 설득해 전집을 기획한 김씨는 영어로 번역된 책이 아니라 해당 언어로 쓰인 판본을 찾아 읽고 한글로 번역했다. 바로 번역해도 원작을 살리기 어려운데 영어를 한 번 거칠 때의 ‘훼손’은 말할 것도 없기 때문. 해당 언어의 사전과 밤새워 씨름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5개 언어를 혼자 번역한다는 게 가능할까.
“시의 문법은 해당 언어의 기존 문법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기존 문법과 끊임없이 싸워나가는 최첨단에 시가 있죠. 영문학을 전공한 제가 다른 언어권의 시를 번역할 수 있는 건 기존 언어의 문법에 매몰되지 않는 시의 문법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는 “전집을 번역하면서 가장 크게 신경 쓴 부분은 시적 핵심을 우리말로 잘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법이 다르면 세계관이 다릅니다. 예컨대 ‘나는 너를 사랑한다’와 ‘나는 사랑한다 너를’처럼 순서가 다르면 무엇이 중요한지가 다른 거예요. ‘너를’ 사랑하는 게 중요한지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지…. 제가 직역투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해당 언어의 세계관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그는 “툭하면 (오래된 시풍인)‘소월시풍’으로 번역하고 ‘선집’이라는 핑계로 좀 어렵다 싶으면 그냥 빼버리는 풍토에 열 받아서 (전집 번역을)시작했다”며 “이 전집을 통해 각국의 시적 감수성이 ‘근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확실히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현재는 근대를 조명하는 작업이 ‘정치적 수난사’를 설명하는 데 그치고 있지만, 위대한 시인을 통해 근대가 생성되는 모습을 재구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총 12권 중 폴란드의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와 스페인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등 7권의 번역을 마쳤다.
번역 작업에 힘을 실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고전을 포함해 좋은 책들을 제대로 번역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번역 작업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생계를 위해 번역을 시작했지만 점점 매력과 의미를 느끼게 돼요. 앞으로 시 안 쓰고 번역만 할지도 몰라, 내 성격에. 허허.”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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