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되는 아이디어라도 절대 깔아뭉개지 않아"

입력 2013-01-31 17:06   수정 2013-02-01 03:19

실리콘밸리 혁신의 비밀 (5) 실리콘밸리, 한인 벤처가 뜬다



‘글로벌 혁신의 중심’ 실리콘밸리에 한국인이 늘고 있다. 삼성 LG 등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구글 애플 인텔 등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엔지니어와 함께 실리콘밸리에서 승부를 보겠다며 스타트업을 일구는 기업가도 늘고 있는 추세다. 현지 한국인 엔지니어들이 만든 친목단체 K그룹의 회원은 지난해 11월 2000명을 넘어섰다.

그중 스타트업 타파스미디어를 창업한 김창원 대표, 삼성 LS 근무경력을 뒤로 하고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을 거쳐 현지 반도체 업체 인터멀레큘러에 근무하고 있는 박병화 이사, 스탠퍼드대 학부와 경영대학원을 나와 벤처캐피털 포메이션8을 만든 브라이언 구 대표(한국명 구본웅), SK하이닉스 미국법인의 김인재 법인장(전무) 등을 만나봤다. 실리콘밸리를 깊숙이 경험한 그들은 한국에 혁신적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려면 교육과 대기업 행태, 젊은이들의 기업가 정신 등을 바꿔야 한다는 충언을 쏟아냈다.

(1) 교육부터 변화해야

획일적 교육으로는 창의적 인재가 나올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구 대표는 “한국이 변화하려면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문제를 주고 풀게 하는 시스템이지만, 여기에서는 뭐가 문제인지를 찾게 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생각과 창의력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스탠퍼드대 1학년 때 수학 문제를 가장 잘 풀었지만, 3학년 때는 시험지를 받은 뒤 문제가 뭔지 몰라 헤맸다는 얘기도 했다.

외국인에게 문호를 활짝 열어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는 학교 동기, 실험실 동기 등과 창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 세계 인재가 모이는 실리콘밸리에선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며 “이렇게 다양하다보니 획기적인 생각이 나오고,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 같아도 절대 깔아뭉개지 않는다”고 했다. 김 법인장도 “여기는 미국인가 싶을 정도로 중국 인도 유럽 등 외국인이 많다”며 “이런 다양한 문화 속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고 말했다.

(2) 재도전의 기회가 필요하다

실리콘밸리에는 ‘실패는 축복’이란 말이 있다. 실패에서 배우면 다음엔 성공할 확률이 커진다는 뜻이다. 박 이사는 “한국에선 불신 문화가 있다 보니 사업이 아닌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며 “그래서 보증을 세우고 사업이 망하면 사람도 망가진다”고 말했다. 미국은 철저히 사업에 투자하고, 본인 책임 아래 지분을 사며 사업 전망이 어려워지면 간단히 지분을 털고 다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벤처 투자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란 재무적 개념이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3) 대기업 M&A에 유연해져야

삼성, LS 등에서 일한 박 이사는 대기업들이 유연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기업은 신사업을 하려면 팀부터 만든다”며 “그런 뒤 해외업체를 벤치마킹하거나, 핵심 인재를 스카우트한다”고 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다르다. 신사업을 하고 싶으면 그 분야에서 잘하는 벤처를 인수한다. 벤처를 사면 사업모델과 인재를 한꺼번에 구할 수 있는 데다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효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를 ‘공돌이’라고 부르는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구 대표는 “이곳은 사업을 할 줄 아는 엔지니어가 이끌어가는 문화지만, 한국에선 기획 재무 등 스태프 부서가 결정권을 갖고 엔지니어는 개발만 하는 경우가 많다”며 “엔지니어가 존중받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인재가 엔지니어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4) 젊은이여, 창업의 꿈을 가져라

구 대표는 “스탠퍼드대에 입학했더니 1학년 때부터 창업하겠다는 친구들이 많아 놀랐다”며 “그들은 창업 기회를 찾아 대학에 왔더라”고 회상했다. 박 이사는 “실리콘밸리에선 가장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인재가 창업을 한다”며 “그러나 한국에서는 젊고 능력 있는 인재들이 대기업에 몰린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성공적인 스타트업이 많지 않고, 스타트업을 사주는 대기업 또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한국의 대학 교육을 받고 바로 창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대기업을 몇 년 경험한 사람들이 창업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창업 지원 제도가 대학생에게 맞춰져 있는데, 직장인에게도 혜택을 줘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삼성에서 일하다 스타트업을 세웠고, 그 회사를 구글에 매각하면서 미국으로 왔다. 

(5) 나눠야 커진다

스탠퍼드대에서는 에릭 슈밋 구글 회장뿐 아니라 많은 기업인이 직접 강의를 하고 있다. 매트 하비 스탠퍼드 테크놀로지벤처프로그램(STVP) 담당 교수는 “실리콘밸리에는 자신의 성공을 나눠주는 문화가 있다“며 “법 제도 같은 건 없지만 돈, 멘토링 등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다시 돌려준다”고 했다.

김 법인장도 “여기는 수십년간 성공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돕고, 그렇게 형성된 네트워크가 확립돼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은 창업 초기 단계부터 기업공개(IPO) 혹은 매각할 때까지 단계별로 여러 벤처캐피털에서 투자를 받는다. 구 대표는 “이곳에선 좋은 투자 대상을 찾으면 숨기고 혼자 투자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고 함께 투자해 성공 확률을 높인다”고 했다.

새너제이=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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