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다시 할게요"…패자 없는 스페셜올림픽

입력 2013-01-31 17:08   수정 2013-02-01 05:51

개막식 성화 최종 점화자 황석일 한국 첫 리본



지구촌 지적장애인들의 스포츠 축제인 스페셜올림픽은 승자와 패자가 따로 없는 도전의 장이었다.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스노보딩 회전 상급경기가 열린 31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는 다른 대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재경기가 반복됐다. 지적장애인 선수들이 실수했을 때는 물론이고 자신의 기록이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튀피아코프는 2차 시기에서 슬로프를 내려오다 한 차례 넘어졌다. 그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대회 운영자에게 재경기를 요청했다. 미국의 마이클 체이스 로더는 힘차게 슬로프를 차고 내려왔으나 참가자 12명 가운데 최하위에 그치자 더 잘할 수 있다며 다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다른 대회에선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스페셜올림픽에선 가능한 일이다. 경기 운영자는 이들의 요구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튀피아코프와 로더는 재경기에서 실수 없이 슬로프를 전력질주했다. 기록이 크게 좋아지거나 전체 순위에 큰 변동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경기를 펼쳤다는 데 만족했다.

이날 경기에선 개막식 성화 최종 점화자로 나섰던 황석일 선수가 한국 선수 가운데 첫 리본을 받았다. 황석일은 스노보딩 회전 상급 디비전2에서 1, 2차 레이스 합계 1분45초50을 기록해 7위에 올랐다. 금·은·동메달을 획득한 러시아의 라빌 카사노프와 튀피아코프, 스위스의 도미니크 무스터에 이어 시상대에 올랐다.

스페셜올림픽에서는 출전자 전원이 시상대에 오른다. 실력이 비슷한 선수들끼리 구성된 디비전에서 1~3위에게 메달, 4~8위에게 리본을 달아준다.

황석일은 “연습할 때와 비슷했고 신나는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습니다”라고 또박또박 소감을 밝혔다. 그를 응원하던 형 석현씨는 “다치지 않고 경기를 마치기를 기도했다”며 “동생이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해내고 큰 무대에서 떨지도 않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세 번째 스페셜올림픽에 출전한 황석일은 스노보드 대회전, 슈퍼대회전 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그는 “연습을 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경기에서 빠르고 멋지게 스노보드를 타는 선수들이 받은 박수보다 슬로프의 경사가 두려워 슬금슬금 내려오는 선수들이 받은 박수가 훨신 컸다. 스페셜올림픽 선수선언의 메시지 ‘이길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길 수 없다고 하더라도 도전하는 데 용기를 내겠습니다’가 구현된 현장이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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