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공포] 관대했던 과거, 엄격해진 현재…'잣대'의 괴리로 줄줄이 낙마

입력 2013-01-31 17:18   수정 2013-02-01 02:13

청문회 무엇이 문제인가

검증은 뒷전…도덕성 맞추는데 급급
인사철만 되면 마타도어 담은 제보 줄이어



‘업무 능력이냐, 도덕성이냐.’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부동산 투기와 두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 등 검증 공세에 밀려 인사청문회 문턱도 넘지 못한 채 낙마하면서 고위 공직자 검증 잣대를 둘러싸고 논쟁이 불붙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까지 “인사청문회가 신상털기 식으로 간다면 과연 누가 나서겠느냐”(1월30일 여당 의원들과의 비공개 오찬회동)고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민들의 눈높이도 못 맞추는 후보자가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과거에는 관행으로 여기며 비교적 관대하게 넘어갔던 것들에 대해 현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발생하는 괴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시각차도 존재한다.


○“가족들 사생활까지 파헤쳐서야”

박 당선인 주변에선 이미 ‘김 후보자의 낙마를 계기로 고위 공직자 후보직을 제의받고도 손사래를 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청문회를 전후한 검증 과정에서 본인은 물론 가족의 사생활까지 파헤쳐질 게 뻔한데 누가 나서겠느냐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31일 “검증 과정에서 대학교수라라면 논문을 다 뒤져 하나라도 이상하면 표절로 몰아붙이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안 사람이라면 투기 의혹을 제기한다”며 “나중에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도 당시로선 마땅히 해명할 방법이 없고 본인과 가족의 명예는 땅에 떨어진다”고 말했다.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 청문회는 너무 마녀사냥 식”이라고 비판했다.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도 2003년 1월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 시절 인사청문회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그는 “총리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적임자를 물색하기 위해 60여명을 대상으로 검증 작업을 벌였지만 최종 통과한 사람은 단 1명에 불과했다”고 했다.

현 청와대 관계자도 “인사철만 되면 후보자에 대한 마타도어(흑색선전)성 제보가 줄을 잇는다”며 “이러다보니 능력 검증은 뒷전이고 청문회 통과에만 급급해 최선의 후보보다 차악의 후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게다가 청문회 잣대도 ‘고무줄’이란 비판을 받는다. 정치 상황과 후보자별로 요구되는 도덕성의 수준이 달라지는 데다 똑같은 정당이 여당일 때는 업무능력을 강조하다 야당이 되면 도덕성에 무게를 두는 등 입장을 달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 같은 청문회가 계속되면 결국 고위 임명직 공직자는 일찍부터 경력 관리를 해 청문회 통과가 상대적으로 쉬운 관료 출신과 국회의원 중에서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사회 지도층 도덕 불감증 깨야”

하지만 지금의 검증 잣대가 결코 무리한 수준은 아니라는 반론도 많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한 방송에 출연해 “청문회 제도가 잘 구축된 미국의 경우 이 정도(김용준 후보자)가 되면 청문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국민들의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을 때는 자진 사퇴하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청문회 때문에 인재풀이 좁아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공직자 검증은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가 길지 않아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도 “도덕성이 갖춰져야지 정책 검증으로 갈 수 있다”며 “‘옛날에 다들 투기했는데 뭐 그거 가지고 시비거냐, 정책적인 게 중요하다’는 식으로 가면 앞으로 30년 뒤에도 우리 사회는 지금과 똑같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인사청문회 제도 덕분에 대통령의 인사 전횡을 막을 수 있고 공직 후보자들의 도덕 불감증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용석/이현진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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