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류로 꼽히는 특수강 기술을 보유한 국내 중견기업의 차장급 간부 두 명이 억대 연봉과 사장·부사장직을 제안받고 이직하는 대가로 중국 경쟁업체에 회사 기밀을 넘겼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스테인리스 와이어 제품을 만드는 중견기업 K사의 생산·영업 관련 기밀 자료를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아 중국 P사에 넘긴 혐의(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로 K사 전 판매팀장 강모씨(42)와 전 미국 공장장 이모씨(44)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일 밝혔다. 스테인리스 와이어는 금속의 녹을 방지하고 일정 강도 이상의 탄성을 유지하는 고부가가치 기술로 자동차용 부품과 의료용 침 등에 쓰인다. K사는 ‘고급 스테인리스 와이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약 4000억원이었다.
강씨와 이씨는 억대 연봉이라는 ‘악마의 유혹’을 못 이겨 20여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의 생산·영업 기술을 7개월에 걸쳐 치밀하게 빼돌렸다. 강씨는 지난해 3월 중국 상하이 인근 경쟁업체인 P사에서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차장급인 강씨에게 사장직과 함께 기존 연봉 7000만원의 두 배가 넘는 1억6000만원의 연봉을 제시한 것. 회사 이익금의 12%도 보너스로 보장받았다. 이씨에겐 연봉 1억원과 함께 부사장직을 제안했다.
여기엔 조건이 있었다. 이제 막 스테인리스 와이어 시장에 뛰어든 P사가 업계에서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K사의 기밀을 빼와야 한다는 것. 해당 업체는 이들을 스카우트한 뒤 공장 시설을 새로 지어 2014년부터 7200 규모의 스테인리스 와이어를 생산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P사 입장에서는 K사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차기 임원 1순위’로 꼽히던 강씨와 이씨가 적임자였다. 이들은 판매팀장과 공장장을 맡고 있어 회사 기밀 자료를 빼오는 데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고액 연봉 제안에 강씨와 이씨는 이직을 결심했다. 그러나 회사를 바로 그만두진 않았다. 회사 기밀 자료를 빼내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해 3월부터 9월까지 K사의 작업 표준서, 매출정보 등 제품 생산을 위한 자료와 영업 노하우 등이 모두 담겨 있는 자료를 빼냈다. 강씨는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K사 전산시스템에 무단으로 접속, 여섯 차례에 걸쳐 24건의 구매 사양서, 공정·설비 관리규정 등 생산에 필요한 자료를 빼냈다. 해당 자료는 K사가 지난 40년간 쌓아온 회사 기밀로, 중국 업체에 넘어가면 연간 5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보는 것으로 K사는 평가했다.
회사 기밀을 손에 쥔 강씨 등은 지난해 7월 회사를 그만둔 직후 중국으로 떠났다. 회사 기밀이 유출된 것을 전혀 모르고 있던 K사는 강씨와 이씨가 열흘 차이로 회사를 그만 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강씨와 이씨가 회사에 “다른 일을 시작하기 위해 잠시 쉴 것”이라고 둘러댄 것도 석연찮았다. K사는 이들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들이 중국의 한 경쟁업체에 출근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K사는 국정원에 이런 사실을 알렸고, 경찰은 해당 사건을 이첩받아 지난해 9월 추석을 맞아 귀국한 이들을 검거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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