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신용평가시장 선진화에 역행하는 것 같습니다.” 신용정보업 감독규정 개정에 따라 평가 기업이 교체된 한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는 이같이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신용평가사는 최근 각각 10명 안팎의 애널리스트들이 맡고 있던 평가 대상 기업을 무더기로 뒤섞었다. 같은 기업을 4년 이상 연속으로 평가하지 못하도록 한 금융당국의 규제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신용정보업 감독규정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2일 고시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내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탁상공론식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목표로 했던 신용평가의 질적 향상은커녕 전문성만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작년 3월 대대적인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신용평가의 품질을 높이고 신용평가회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게 골자였다. 기업과 신용평가사 간 유착관계를 끊는 데도 주목했다. 기업의 재무·사업상태에 비해 높은 신용등급이 부여되는 ‘등급 거품’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게 애널리스트 순환 보직제 강화다. 기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의 교체 주기를 짧게 하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질 것이라는 논리에서였다.
결국 신용정보업 감독규정 개정으로 같은 기업에 대해 5년을 초과해 연속 평가하는 것을 금지한 기존 순환 보직 체계는 4년 이상으로 강화됐다. 그러나 이는 신용평가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간과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이 신용평가사의 주된 수입원인 평가 수수료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애널리스트 순환제를 강화한다고 해도 별다른 효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을 이해하는 데만 2~3년이 걸리고, 4년쯤 돼야 기업에 대한 깊이 있는 평가가 가능해진다”며 “신용평가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긍정적 효과보다 전문성 약화라는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보다 실장급 책임자의 임기를 단축하는 게 실효성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실질적으로 기업과 접촉하면서 신용평가사의 수익을 고민하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수수료 체계 개선을 비롯해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을 고민하지 않은 1차원적 규제가 신용평가시장 선진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김은정 < 증권부 기자 kej@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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