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MB노믹스' 주역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고별 인터뷰

입력 2013-02-03 16:52   수정 2013-02-04 18:31

"복지 늘리자고 빚을 낼 수는 없다…창의적 방안 찾을 것"

환율전쟁 대응 방안
정부가 시장 이길 수는 없어…日도 무리하면 대가 치를 것

퇴임 후 활동은
대학으로 복귀 강의에 전념…열심히 준비해 논문도 쓸 계획




“돈 들여서 뭘 하겠다는 건 ‘정책’이 아닙니다. 빚 안 지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디자인’하는 게 정책이죠.”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가 부채는 최후의 선택’이라고 틈날 때마다 강조해왔다. 금융위기로 경제가 휘청거리고 대선정국에서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재정확대 요구가 늘어나는 분위기 속에서도 나라 곳간만은 지켰다는 평이다. 그런 박 장관에게 임기 말 더욱 힘겨운 임무가 주어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 공약에 소요될 135조원의 재원 마련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난달 28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 집무실에서 만난 박 장관은 “빚을 내지 않고도 공약을 이행할 수 있는 창의적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언론도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답했다. 난제 중의 난제지만 솔루션을 찾을 수 있다는 나름의 자신감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서면 “당선인에게 있는 그대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5년간 동고동락했던 이명박 정부 임기가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장관 박재완’을 스스로 평가하신다면 어떻습니까.

“부처간 칸막이, 부서 간 장벽을 없애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정책을 펼 때는 여야와 국민 모두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요. 잘된 것도 있고 안 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한국 사람은 개성이 강합니다. 예를 들어 서비스산업 발전기본법은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어요. 설명과 설득을 조금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MB노믹스’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요.

“정부 입김을 줄여 민간의 창의와 활력을 높이자는 큰 방향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출범한 지 6개월 만에 리먼 사태가 터지더니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 때문에 대기업 투자를 촉진해 일자리를 늘리는 ‘낙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역풍 속에서 낸 기록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 신용등급이 줄줄이 하락했지만 우리는 상향됐고 일자리도 120만명 늘어났습니다.”

▷서민 생활은 더 팍팍해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부가 성장에 무게를 두면서 그런 인상을 준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니계수나 비정규직 비중 같은 소득분배 지표는 나아졌습니다. 대학생 등록금 대출, 장학금 지원, 보육 지원 등도 이번 정부가 한 것입니다. ‘소수 부자를 위한 정부’라는데 어떤 정부가 바보처럼 그런 정책을 하겠습니까. 정부 기조가 ‘친서민’이냐 아니냐보다 실제 성과를 봐야 합니다.”

▷최근 환율이 급변동하면서 ‘블랙스완’ 같은 위기론까지 나옵니다.

“원인을 제공한 선진국들의 양적완화와 일본의 엔저 정책 등을 놓고 각국이 논쟁 중입니다. 다른 나라들의 정책을 평가하는 것이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우리도 나름대로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일본의 현 경제정책이 지속 가능할까요.

“엔저 정책은 단기적으로 부양효과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서서히 비용이 수반될 것입니다. 한계는 찾아옵니다. 과유불급과 같은 정책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돼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환율전쟁 와중에 우리 정부만 손놓고 있는 것 아닐까요.

“글쎄요. 몇 달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고환율 정책 때문에 수출 기업만 살찌우고 서민생활은 피폐해졌다’고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다시 환율을 올리라니 묘하지요. 이번에 드러난 진실은 ‘정부가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을 안 썼다’는 겁니다. 사실 정부 입장에서 물가나 국내총생산(GDP) 목표를 생각하면 환율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부가 환율을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고환율정책 논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아요. 정부가 대기업 편을 든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지난 5년간 내놓은 기업대책의 90%는 중소기업 대상이었을 겁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 ‘과잉 기대와 오해’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추세는 어찌 할 수 없다는 뜻입니까.

“환율은 수급과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따라 움직입니다. 정부가 원화 강세나 약세를 유도할 수 없습니다. 속도만 늦출 수 있을 뿐이죠. ”

▷정부가 경기 회복을 위해 조기집행 등 재정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 중입니다. 이럴 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힘을 받을 텐데 아쉽지 않습니까.

“한은이 금리를 동결한 것은 가계부채와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인 듯합니다. 금리를 내리면 재정지출 압박은 덜겠지만 한은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물론 (한은의 지원 없이) 정부 혼자 나선다는 게 외로울 때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은 앞장서서 경기를 띄우는데 우리는….”

▷예산 이야기를 해볼까요. 지난해 7월 재정부가 무상보육 방안에 대해 소득수준별 차등 원칙을 꺼냈지요.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까.

“그때는 정치권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봤습니다. 정무적으로 어리석다는 말도 들었지만 잘못된 것은 바로잡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재작년 말엔 왜 무상보육 예산을 편성했습니까.

“‘패키지 딜(Package Deal)’이 이뤄졌습니다. 당시 정치권의 기초노령연금과 등록금 지원 등에 비하면 증액 우선순위가 있다고 본 거죠. 다만 아파트 단지 내 보육시설이 새로 생길 정도로 수요가 급증할지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2011년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어서 예산을 심의할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지금도 그 편이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무상보육이 명분은 있으니까요.”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공약을 위해 재원 마련책은 다 세웠습니까.

“최선을 다해 맞추려고 합니다. 신뢰를 중시하는 문화를 확립하려면 위에서부터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요. 다 찾아보고도 재원이 안 나온다면 그땐 그렇게 이야기해야지요. 시행 시기를 좀 늦추는 등 선택지도 있을 테고요.”

▷언론은 재원 마련이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고정관념일 수도 있을까요.

“당연히. 심지어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그런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궁즉통(窮則通)’이라지요. 창의적 대안은 있습니다. 올해 예산에서 정부가 이차보전 방식으로 6조7000억원의 지출 효과를 창출했고, 세입 확대를 위해 비과세·감면 총액의 상한선을 제시하기도 했지요. 당선인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정부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빚은 가급적 안 내야 한다는 겁니다. 정부 부채는 가계 부채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책임이 분산돼 있어 빚져도 아픔이 덜하거든요. 저 자신도 정부 부채보다 우리 집 부채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니까요(웃음). 단순히 ‘돈 얼마 써서 무엇을 하겠다’는 건 정책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이 자리에 누구를 데려놔도 할 수 있어요. 정책은 ‘디자인’입니다. 빚 안 지고도 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드는 작업이지요.”

▷이번 정부에서 두 번의 청와대 수석, 두 번의 장관직을 거쳤습니다.

“저는 제가 어디로 갈지 알고 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떠날 때는 알려줄 지 모르겠습니다(웃음). 국정기획수석 임명이 있던 날엔 대통령과 하루 종일 같이 다녔는데 한마디도 못 들었습니다. 당연히 학교로 복귀해야지 했는데 임명장 수여식 직전에 TV 자막으로 제 임명 소식을 알았습니다.”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셨는데 대학으로 돌아가면 갑갑하지 않겠습니까.

“올해 1학기 2과목, 2학기 3과목을 잡아놨습니다. 1년간 죽어라 열심히 준비해야 강의할 수 있을 겁니다. 연구 논문도 써야 하고요. 새로운 도전이고 벅찬 일이 될 것 같습니다. ”

만난 사람=조일훈 경제부장
정리=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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