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 계기로 재무점검강화 포석
금융감독당국이 대기업 및 계열사들이 발행한 회사채·기업어음(CP) 등 시장성 차입금의 절반을 은행대출과 같은 신용공여액에 포함하기로 한 것은 갈수록 약화되는 주채권은행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시장성 차입의 50%를 여신으로 환산해 반영하면 주채무계열로 선정되는 그룹의 수가 확대된다.
현행 은행감독규정에 따르면 대기업이 주채무계열로 지정되면 주채권은행은 해당 그룹의 재무구조를 평가하고, 문제가 있으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어 관리한다. 주채권은행이 부실이 우려되는 대기업의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간섭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현대그룹은 과거 주채무계열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사채 발행을 늘리고 은행대출은 대폭 축소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대그룹은 현재 시장성 차입이 80%에 달하고 은행 대출은 20%에 불과하다”며 “회사채와 CP 발행액의 절반이 여신으로 간주되면 다시 주채무계열에 포함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내다봤다.
금감원은 금융회사 총 여신공여의 0.1% 이상으로 돼 있는 주채무계열 선정 기준을 하향조정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지난해 주채무계열 선정시 금융권의 총 신용공여액은 1462조2000억원이었다. 이에 따라 0.1%에 해당하는 1조4622억원 이상을 은행권 등에서 차입한 34곳이 주채무계열로 선정됐다. 이 기준이 0.75% 또는 0.05% 이상으로 낮아지면 주채무계열에 새로 포함되는 대기업 수는 10곳 정도 늘어날 것이란 게 금융권의 예상이다.
지난해 웅진그룹의 급작스러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이후 빚어진 혼란도 금감원이 주채권은행 역할 강화를 추진하게 된 요인이다. 당시 금감원과 채권은행들은 웅진그룹의 회생절차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눈을 뜨고 당했다”는 말이 은행권에서 나왔을 정도다.
금감원과 주채권은행은 웅진의 재무구조가 급속히 악화되자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으려 했으나, 웅진은 법원행을 선택하고 말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업의 부실이 악화되면 주채권은행과 긴밀히 협의해 연착륙 방안을 모색해야 사회적인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웅진의 갑작스러운 회생관리 신청으로 회사채에 투자한 개인은 물론 많은 건설 관련 하청기업들이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주채무계열 선정기준 개선과 동시에 주채권은행이 그룹의 무분별한 경영과 투자행위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대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주채권은행의 업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해당 그룹의 실질적인 지배구조와 재무상황을 파악하도록 세부 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다.
아울러 주채무계열이 아닌 취약그룹에 대해서는 가장 많이 대출한 은행이 주채권은행에 준하는 역할을 하도록 강력히 지도해 나가기로 했다. 해당 은행에 대한 금감원의 정기검사 때 주채권은행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따져보고 필요시 제재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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