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들 어색한 만남…지경부 중재 먹힐까

입력 2013-02-04 17:17   수정 2013-02-05 03:09

인사이드 Story - 삼성-LG 디스플레이 특허분쟁 화해모드?

서울 팔래스호텔서 3자 회동…공무원 30분 먼저 도착 '이례적'
정부 "국익차원서 고려해달라"…삼성·LG "확전 자제" 의지 확인




4일 서울 반포동 팔래스호텔. 지식경제부에서 디스플레이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총출동했다. 이들은 눈길을 뚫고 약속시간인 낮 12시보다 30분 먼저 나타났다. 지경부에서 산업 지원 업무를 총괄하는 김재홍 성장동력실장(차관보)은 오찬 장소에서 20분가량 기다렸고 김 실장을 따라 나온 사무관들은 호텔 밖에서 대기했다.

공무원들의 ‘의전’을 받은 주인공들은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과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 두 사람 모두 오전 11시50분께 왔다. 넥타이를 매고 온 김 실장과 달리 약속이나 한 듯 노타이 차림이었다.

3자 회담 장소로 쓰인 이 식당의 직원은 “공무원들이 업체 사람보다 먼저 와서 식사 장소까지 수행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고 했다.

이날 오찬은 삼성과 LG의 디스플레이 수장들이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난타전 양상을 보인 두 회사 간 특허 소송의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작년 4월 인력 유출 사건으로 시작해 10개월간 7건의 민사 소송을 주고받은 터라 최소한 “확전은 자제하자”는 의사를 서로 확인하고 싶어했다.

김 사장과 한 사장은 회동 후 “큰 방향에서 하나씩 해결해 가겠다”면서도 ‘소송을 취하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입을 닫았다.

이에 비해 지경부는 좀 더 속도를 내고 싶어했다. 김 실장은 만남에 앞서 “두 회사가 (소송을 취하하고) 합의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정리한 걸로 안다”고 했다. 김정일 지경부 반도체디스플레이과장도 “(합의를 보기로) 사전에 협의가 됐으니 오늘 나오는 거 아니겠냐”고 지원 사격을 했다. 행사 사진도 이례적으로 지경부에서 각 언론사에 제공했다. 이에 대해 한 사장은 “지경부가 너무 빨리 나간 것 같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지경부가 조급해진 이유를 정부 부처 조직 개편에서 찾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달 16일 차기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기로 발표했다. 동시에 각 부처의 연구·개발(R&D) 기능을 미래부 산하로 통합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지경부는 삼성과 LG의 특허 소송 대상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비롯해 반도체, 헬스케어 등 미래 성장동력의 R&D와 인력 양성 업무를 미래부에 넘겨주게 된다. 삼성과 LG 주변에서 “지난해엔 뒷짐지고 구경만 하더니 정부 조직 개편 얘기가 나오니 지경부가 움직이기 시작한 배경은 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김 실장은 “한 회사가 나서서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국익 차원에서 정부가 나선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양사가 화해모드로 접어든 건 지경부의 ‘종용’ 때문만은 아니다. 두 회사 내부 분위기도 분쟁 해결에 우호적인 쪽으로 바뀌고 있다.

작년 말 삼성디스플레이 최고경영자(CEO)가 김 사장으로 바뀐 뒤 삼성 내부에서 “무조건 싸우자”는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김 사장은 지난달 23일 “건설적인 방향으로 가겠다”고 소송에 대해 처음 말문을 열었다. 삼성 미래전략실도 강성에서 화해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LG 내부에서도 “싸움을 확대하는 건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온건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한 사장은 지난달 8일 삼성과의 타협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시기상조”라고 일축했다가 지난달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선 “삼성이 결자해지한다면 특허 공유 등 서로 주고받을 게 있는지 얘기해볼 수 있다”고 합의 가능성을 열었다.

정인설/정성택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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