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네트워크 지역 조성 인력과 자금, 선택과 집중을
“국내 제약 기업들이 개발한 신약 10여종이 임상 단계에 진입하는 등 이제 가시적인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애를 끓이던 나로호(KSLV-Ⅰ)가 최근 성공을 거두며 우주과학이 발전 발판을 마련했듯 신약 분야에서 이제 나로호 같은 성공 모델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한국경제신문이 5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FTA 시대, 글로벌 신약으로 해법 찾는다’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회사들이 좁은 내수시장의 한계에도 비교적 선전해 왔지만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신약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신약 개발 업체가 확실한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약가 평가 제도 등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좌담회에는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장, 김정은 카이노스메드 부사장, 손지웅 한미약품 부사장, 오태광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등이 참석했고 남궁 덕 한국경제 중기과학부장이 사회를 맡았다.
▷사회=국내 제약업체들의 신약 개발 경쟁력은 어떤 수준인가.
▷오태광 원장=국내 상장 제약사의 R&D 투자비율은 9.1%로 글로벌 제약사(16.8%)의 절반 수준이다. 비아그라로 유명한 미국의 화이자에 비해 국내 1위 기업인 동아제약의 R&D 투자액은 135분의 1에 불과하다. 연구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박사급 전문인력은 미국의 100분의 1 수준, 일본과 비교해도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손지웅 부사장=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신약 개발, 임상 단계 진입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국내 연구개발 인력도 전체 인력의 20% 수준으로 화이자와 비슷하다. 취약한 분야는 전문가 네트워크 등 협력이다. 한국은 다양한 전문가들의 협동을 필요로 하는 중개 연구와 초기 임상 개발 단계의 전문 인재의 층이 엷고,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과 협동하는 문화도 약하다. 미국처럼 지역별로 제약 R&D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부사장=한국의 제약산업 규모는 세계 시장의 1~2%대에 불과하다. 제한된 연구개발 투자비와 연구인력을 갖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려면 선택과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개발한 길리어드 연구소에는 실험을 위한 쥐를 한 마리도 키우지 않는다. 동물시험은 모두 외주 연구를 맡기고 연구개발에만 집중한다. 자체 역량으로 해야 하는 연구와 아웃소싱할 수 있는 분야를 구분해 효율화하는 게 중요하다.
▷사회=강소 제약기업을 키우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손 부사장=인위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우라고 강요하는 것보다는 정부가 제약사 간 다양성을 존중하고 혁신 신약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 덩치를 키워 비용을 줄일수는 있지만 인위적인 인수합병으로는 혁신적인 신약을 만들어낼 수 없다. 좋은 약물후보가 있다면 임상을 안하더라도 글로벌 제약회사와 손을 잡는 등 해외 공동연구에 나설 수 있다.
▷김 부사장=생각이 약간 다르다. 길리어드는 연매출 15억달러의 거대 회사다. 길리어드도 기본적인 기업 규모를 갖췄기에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임상연구에 나서려면 적정한 수준의 규모를 갖춰야 한다. 일본 제약회사들은 연구능력이 탁월하지만 규모가 작아 세계시장 진출에 애를 먹고 있다. 한국은 제약회사의 숫자도 너무 많다. 시장 규모만 보면 5개 회사 정도면 충분한 수준이다.
▷사회=제약업계가 처한 신약개발 현실은 어떤 수준인가.
▷손 부사장=신약은 지식과 경험에서 나오는 산물인데 이제 10년 정도 연구 개발을 해온 우리 기업들이 성공 스토리를 만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제약 분야는 반도체, 철강 등 제조업보다는 영화,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전하는 것과 더 비슷하다. 영화나 공연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하나를 작품을 만들어가는 게 제약과 비슷하다. 국가 R&D정책은 선수를 질책하고 내쫓는 방식이 아닌 최소한의 틀 안에서 보호해주며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뛰어놀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
▷김도연 위원장=어느 분야건 전체 R&D 중에 정부가 담당하는 몫은 25%를 넘기 힘들다. 나머지 역할은 기업 몫이다. 정부의 R&D는 비전을 제공해주는 수준에서 우수인력 육성, 기초연구지원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게 적합하다. 나머지는 시장의 자율성을 토대로 기업이 스스로 찾게 해줘야 한다.
▷김 부사장=미국의 벤처캐피털에는 과학과 제약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전문가들이 많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이유는 제약 R&D 비즈니스 모델이 미국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벤처캐피털들도 바이오테크 분야의 미래를 연구하고 전문화시켜 투자를 활성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밴처캐피털 투자로 한국에서도 길리어드 같은 회사가 늘어나면 해외 많은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에 더 많이 투자할 것이다.
▷사회=글로벌 신약개발을 위해 정부, 기업이 해야 할 역할은.
▷손 부사장=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힘을 합쳐야 한다. 우리나라는 퍼즐 한조각을 만드는 기술은 훌륭한데 그것을 누가 잘 맞출지에 대한 프로세스 경험과 문화, 규제와 지식 사이의 균형, 보상문제 등이 오케스트라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서 협력하는 모델이 필요하다. 업계 1위인 동아제약이 매출 1조원을 못넘긴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제약시장 특성을 보자면 사실 화이자만큼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오 원장=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신약은 혁신신약을 의미한다. 따라서 혁신형 제약기업 육성과 바이오기업에 혜택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제약기업들이 영업과 마케팅 중심의 관행에서 탈피해 R&D 중심으로 바꾸도록 정부가 유인해야 한다.
▷김 위원장=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제약 분야도 인력이 부족하고 R&D 인프라도 열악하다. 산·학·연 간 개방성 확대와 협력을 통해 이를 보완해야 한다. 인력과 정보가 산·학·연 사이에 왔다갔다 해야 뭔가 만들어질 수 있다. 정부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약산업 R&D 관련 총 6개 부처가 관여하고 있는데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정리=김태훈/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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