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세상 어지럽히는 잘못된 개념들

입력 2013-02-06 17:06   수정 2013-02-07 06:14

'공동체 자유주의''사회적 기업' 등 앞뒤 안맞는 모순적 용어 남발
현혹되지 않으려면 지적각성 필요

김영용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에는 특정한 개념이 담겨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개념이 담긴 용어를 사용하며 서로 소통한다. 경제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요즘 앞뒤가 맞지 않는 용어들이 남발되면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이 이런 용어의 남발을 결과했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착한 가격’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소비자의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낮은 가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수요는 소비자들이 상품에 부여하는 주관적 가치를 반영하고 공급은 생산자들이 상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주관적 비용을 반영한다. 그래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변화할 뿐, 착한 가격이나 나쁜 가격은 없다. 즉 가격에는 선악이 없다. 또 소비자의 가치와 공급자의 비용을 반영하는 가격에는 정당·부당, 도덕·부도덕한 개념도 들어 있지 않다. 가격은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제 활동을 안내하고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비인격적인 존재일 뿐이다.

착한 가격을 들먹이는 배경에는 일부 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서도 가격을 내리지 않는다는 불만의 뜻이 들어 있다. 반(反)기업 정서의 표현이다. 그런데 시장 상황을 거스르면서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있는 공급자는 정부가 울타리를 쳐준 독점이 대부분이다. 종종 드 비어스(De Beers)사가 다이아몬드 원석을 독점함으로써 높은 가격을 매기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아주 드문 일이다. 가격이 마치 인격을 가진 것처럼 인식하거나 이를 부추기는 행위는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선동일 뿐이다.

설문조사 기관들이 묻는 질문에도 개념적 오류를 범하는 문항들이 자주 발견된다. 그중 하나가 사람들에게 성장과 분배 중 어느 것이 우선돼야 하는가를 묻는 항목이다. 성장과 분배의 우선 순위를 논하는 것은 생산과 분배의 과정이 분리될 수 있다는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생산과 분배가 동시에 이뤄지는 시장경제에서는 그런 이분적(二分的) 과정이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과 자본을 투입해 만든 산출물을 자신이 가질 것이라는 기대 아래 생산활동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생산과 분배의 이분적 분리가 가능하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의 삶은 궁핍해진다. 내가 생산한 산출물이 나에게 귀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성장과 분배의 우선 순위를 묻는 질문은 우리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묻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번영과 궁핍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그런 질문에 의미가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설문을 다반사로 해대는 기관은 실력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인간적인 정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사회나 집단을 만들자는 취지의 공동체가 강조되기도 한다. 물론 구성원들이 유사한 가치와 생각을 가진 아주 작은 소규모 사회에서는 공동체가 문자 그대로 기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와 같이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대 사회에 특정한 이름을 붙여 범주화하면 개인은 공동체의 부속물로 전락한다.

사회는 개인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행동하고 사고하는 주체는 개인이지 사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개인이 모인 사회를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공동체로 명명하고 인격을 부여하면 소수에 의해 자의적이며 획일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의 가치가 우선되고 개인의 가치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결국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자유는 말살되며 실체가 없는 공동체의 가치 실현을 위해 ‘큰 형님’이 강림하고 전체주의로 치닫게 된다. 이 외에도 ‘공동체 자유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적 기업’ 등 앞뒤의 용어가 본질적으로 서로 묶일 수 없는 형용모순적인 것들이 그럴 듯하게 등장해 사람들을 현혹한다. 그러나 조금만 신중히 생각해보면 그 허무맹랑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세상을 어지럽히려는 무리가 흔히 사용하는 수법은 기존의 용어를 왜곡하거나 주술적인 용어를 새로 만들어 대중의 무지한 틈을 파고들며 현혹하는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자신들의 이익을 얻으려는 계산이 섬세하게 깔려 있다. 이런 수법에 현혹되지 않고 지금까지 피땀 흘려 많은 것을 이룩해 온 한국사회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길은 항상 지적으로 깨어 있는 것이다.

김영용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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