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에너지 음료

입력 2013-02-06 17:23   수정 2013-02-07 06:16

카페인은 식물이 자신에게 해로운 곤충을 죽이거나 마비시키기 위해 만들어내는 일종의 살충제다. 실제 미국 농무부의 농업연구기구 실험에서 정원의 달팽이류에 커피 속 카페인을 뿌리면 잠시 몸부림치다가 죽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인체에서 나타나는 반응은 좀 다르다. 중추신경을 자극해 일시적으로 피로나 스트레스를 줄이는 각성효과를 낸다.

문제는 과다 복용이다. 카페인 하루 권장 섭취량은 성인 400㎎, 임산부 300㎎, 어린이는 체중 1㎏당 2.5㎎이다. 캔커피 하나에 74㎎, 커피믹스 한 봉지에 69㎎, 250㎖ 콜라 한 병에 23㎎ 정도 들어 있어 이것 저것 먹다 보면 권장량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정신이 맑아지고 잠을 쫓는 것으로 알려진 고카페인 음료까지 유통되고 있다. 이른바 ‘에너지 음료’다. 몬스터에너지 등 일부 제품은 서너 캔만 마셔도 하루 섭취 권장량을 초과하는 모양이다. 상습적으로 먹다보면 불면, 불안, 혈압상승, 행동·정서 장애, 메스꺼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한다.

에너지 음료의 뿌리는 일본이다. 다이쇼제약이 1940년대 후반 일본왕립해군병사들이 피로해소와 밤눈 밝힘용으로 쓴 데 착안해 ‘타우린 엑스’를 개발했다. 이어 1960년 무렵에는 카페인 50㎎, 타우린 1000㎎ 등을 함유한 ‘리포비탄 디’를 내놔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회사 측은 50여년간 340억병을 팔 때까지도 이 음료에 관한 임상연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든 에너지 드링크는 세계 각국 청소년들이 시험 기간이나 공부할 때, 기분전환으로 마시는 대표 음료가 됐다. 에너지 음료에 비타민 분말과 자양강장제 등을 섞는 ‘붕붕 주스’, 술을 섞는 ‘에너지 폭탄주’ 따위의 변종까지 등장했다.

미국에서 에너지 음료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상원의원 3명이 식품의약국(FDA)에 에너지 음료의 위험성 조사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데 이어, 용기표면에 성분명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플로리다주 매내티카운티는 아예 이번 학기부터 공립학교 내 에너지 음료 판매를 금지했다. 미국에서는 한 해 60억캔의 에너지 음료가 팔려나가며, 10대 청소년의 31%가 상습적으로 마신다고 한다.

우리도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다. 에너지 음료 상습복용 청소년이 갈수록 늘면서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식약청이 학교매점 등에서 1㎖당 0.15㎎ 이상의 카페인을 함유한 음료 판매를 금지할 방침이라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대부분 과제, 시험공부, 야근 때문에 ‘깨어있기 위해서’ 마신다니 하루아침에 딱 끊도록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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