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150㎞가량 떨어진 시즈오카현 고텐바시의 자동차경주장 후지스피드웨이. 만년설로 덮여 있는 후지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인 드라이버가 탄 포뮬러 경주차(바퀴가 밖으로 튀어 나와 있는 형태)가 지나가자 ‘애~앵’ 하는 특유의 고음이 고막을 때렸다.
한국인 포뮬러원(F1) 드라이버 육성을 향한 도전이 일본에서 첫 시동을 걸었다. 오는 8월 강원도 인제의 인제오토테마파크에서 열리는 일본의 간판 포뮬러 대회인 ‘슈퍼포뮬러’에 출전할 한국인 드라이버를 선발하는 공개 오디션이 후지스피드웨이에서 7일 열렸다. 슈퍼포뮬러는 지난해까지 ‘포뮬러 닛폰’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아시아 최고 수준의 포뮬러 대회로 F1 바로 아래 단계인 F2급이다. 배기량은 3400㏄급 V8엔진을 얹어 최대 출력 600마력, 최고 시속 320㎞를 내는 경주차로 경주를 진행한다. 랄프 슈마허, 페드로 데라 로사 등 이 대회를 거쳐 F1에 진출한 드라이버들이 많을 정도로 수준 높은 대회다.
이날 오디션은 한국인 F1 드라이버 양성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F1을 3년째 열고 있는 한국에선 제대로 된 포뮬러 대회가 없어 F1 드라이버가 나오기 힘들었다. 하지만 올해 슈퍼포뮬러를 유치한 인제오토피아가 한국 선수를 인제 대회에 출전시키기로 하면서 포뮬러 드라이버 육성에 나섰다. 이를 위해 포뮬러를 타본 경력이 있는 선수들 가운데 최해민(29) 정의철(26) 김동은(21)을 선발해 후지스피드웨이 오디션 경쟁에 참가시켰다. 이 가운데 가장 기록이 좋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 한 명을 뽑아 8월 인제 대회에 출전시킬 예정이다.
김도형 인제오토피아 본부장은 “한국 드라이버를 슈퍼포뮬러에 참가시켜야 한국과 아시아 시장에서 흥행을 기대할 수 있다”며 “한국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면 앞으로 지원을 확대해 정상급 포뮬러 선수로 키워내겠다”고 말했다. 슈퍼포뮬러를 주관하는 재팬레이스프로모션(JRP)의 시라이 히로시 대표도 “F1 드라이버가 탄생하려면 F4, F3를 거쳐 최상위인 슈퍼포뮬러에서 성적을 내야 한다”며 “한국에서 이 같은 피라미드를 두텁게 하기 위해 슈퍼포뮬러의 노하우를 제공해 협력하겠다”고 했다.
이날 오디션은 슈퍼포뮬러보다 한 단계 아래인 F3 경주차로 치러졌다. 가장 먼저 테스트에 나선 선수는 미국의 인디카 시리즈의 하위리그인 USF2000에서 활약한 최해민. 최해민은 경주차에 올라타기 전 “포뮬러를 탄 경력이 7년”이라며 “포뮬러 선수로서 성장하기 위한 좋은 기회인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테스트 시작 전 JRP와 인제오토피아의 관계자들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최해민이 레이스를 시작하고 4.563㎞의 후지스피드웨이 트랙 첫 바퀴를 돌았을 때 랩타임(트랙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51초66. 무난한 출발 후 바퀴가 거듭될수록 랩타임은 줄어들었고 관계자들의 표정엔 미소가 감돌았다.
최해민은 최고 랩타임을 1분42초68까지로 처음보다 9초가량 끌어올렸다. 최해민은 랩타임을 더 줄일 수 있었지만 레이스 중반 브레이킹 실수로 아쉽게 코스를 이탈하면서 이날 테스트를 마쳤다. 이날 함께 레이스를 한 일본 드라이버들의 최고 랩타임이 1분40초대인 것을 감안하면 좋은 기록이다. JRP 관계자는 “최해민이 아주 무난하게 탔다.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후지스피드웨이에서 레이스를 해본 경험이 있는 정의철과 김동은도 테스트를 마쳤다.
인제오토피아는 이날 경기 기록과 발전 가능성을 종합해 최종 한 명을 선발, 12일께 발표할 예정이다.
고텐바=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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