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커피 마실 때마다 돈은 내가, 쿠폰은 '쿠거'가 챙기다니…

입력 2013-02-11 16:00   수정 2013-02-12 04:42

직장인 잡는 '빈대'들

점심값 7000원인데 1만원 걷어 잔돈은 자기 주머니에 '쏙'
총무 맡더니 회비로 포인트 적립…"노력의 대가"라며 되레 당당
구내식당은 '빈대'들의 천국…"저렇게 살고 싶나" 걱정도




“여기 잘 안 오지?”

지갑에 쿠폰을 넣으려는 순간 ‘쿠거’의 손길이 다가왔다. 돈은 내가 냈는데 쿠폰은 결국 쿠거가 가져갔다. 한 중견기업 기획팀의 안 대리는 팀원들 사이에서 ‘쿠거’로 불린다. 언뜻 들으면 귀여운 발음의 애칭같아도 실상은 ‘쿠폰 거지’라는 의미다. 함께 커피를 먹을 때면 꼭 자신의 쿠폰에 도장을 찍게 ‘강요’하고 쿠폰을 받아 지갑에 넣으려는 순간 채가기 일쑤다. 점심시간에 길목마다 지키고 선 전단지 아주머니들의 종이도 다 받아 챙겨 신장개업한 업체의 쿠폰이 있는지 반드시 살핀다. 그런 그를 두고 주변에선 속삭인다. “도장 10개를 채워 커피 마실 때 ‘쿠거’ 표정 봤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야.”

어딜 가나 꼭 있는 얄미운 ‘빈대’들. 가끔은 불쌍한 마음에 사주기도 하지만 허구한 날 이어지는 진상 행각에 고생하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고충을 들어봤다.

◆제가 현금이 없어서요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는 도 대리의 지갑엔 언제나 1000원짜리, 500원짜리 등 잔돈이 가득하다. 도 대리가 잔돈을 챙기게 된 것은 점심 때마다 출몰하는 빈대 이 대리 때문. 도 대리와 같이 근무하는 이 대리는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대신 점심을 먹고 나서는 “아, 현금이 없네. 제가 카드로 계산할 게요. 1만원씩 주세요”라며 회비를 걷는다. 문제는 점심값은 보통 7000~8000원이라는 점. 팀원 5~6명이 먹다 보면 남는 돈만으로도 1만원이 넘는데 이 대리가 거스름돈을 준 적은 한 번도 없다.

“몇 천원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도 치사하고 그냥 넘어가다 보니 한 달이면 몇 만원씩 이 대리에게 ‘용돈’을 주고 있더라고요. 같은 팀이라 밥을 따로 먹을 수도 없고, 요즘은 밥값에 딱 맞게 돈을 줍니다.”

◆회비로 재테크

대기업 신입사원인 조씨는 모든 회식 자리나 동기 모임에서 재테크(?)를 한다. 술에 취해 회비를 내지 않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식이다. 한번은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술에 취해 “집에 갈 택시비를 준다”며 사원들에게 각자 집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서울에 사는 조씨는 갑자기 “오늘은 안산에 부모님 집에 가야 한다”며 혼자 택시비 5만원을 받아갔다. “상사가 술에 취했으니 이때다 싶었나봐요. 술자리에서 혼자 재테크하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영업팀의 김 대리는 자진해 모든 모임의 총무를 맡는다. 그가 노리는 것은 카드 포인트. 항공 마일리지가 쌓이는 카드를 사용해 1년에 2만마일리지 이상을 적립한다. “회비는 10원 단위까지 나눠서 정확하게 관리해요. 제 노력의 대가로 마일리지 정도 쌓이는 건데 이건 빈대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요.”

◆회사는 그를 먹여살린다

미혼에 자취를 하고 있는 박 대리에게 회사는 말 그대로 그를 ‘먹여살려주는 곳’이다. 박 대리는 점심시간이면 수상한 쇼핑백을 들고 구내식당으로 간다. 그가 노리는 것은 구내식당의 반찬. 몇 끼는 푸짐히 먹을 양의 반찬을 가져와 구석자리에서 반찬통에 옮겨 담는다. 수상한 쇼핑백에는 집에서 가져온 빈 반찬통이 있었던 것. 매일매일 박 대리 자취방에는 하루하루 색다른 메뉴의 회사 반찬들이 쌓여간다.

평소 간식을 좋아하는 이씨는 견과류, 초콜릿, 핫초코 등을 회사에 가져오곤 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매의 눈으로 직원들의 책상을 살피는 김 부장 때문이다. 새로운 간식을 가져온 날이면 김 부장은 이씨 자리를 돌아보며 하나씩 맛을 보기 시작한다. 이때 맘에 드는 간식이 포착되면 큰 일이다. 김 부장은 이씨의 간식을 먹을 뿐 아니라 집에 가져가기 때문이다.

“회사에 있으면서 간식으로 먹는 건 이해를 하겠어요. 근데 제가 사온 과자들을 애들이 좋아하는 거라며 집에 가져가더라고요. 그렇게 애들이 좋아하면 사다 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담배 하나만”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오 부장은 몇 달 전 금연을 선언했지만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주저없이 담배를 피워 문다. 문제는 오 부장이 자신이 금연을 했다는 이유로 담배를 절대 사지 않는 것.

‘담배 불매의 원칙’은 오 부장 팀원들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게 됐다. 하루 5개비 이상 담배를 피우는 오 부장은 매번 부하직원들에게 돌아가면서 담배를 빌린다. “미안한데 담배 하나만 줘라, 아 스트레스 쌓여…”라는 오 부장 말에 팀원들은 꺼낼 수 없는 말을 속으로 삭인다. ‘부장님 때문에 저희도 스트레스 쌓여요 ㅠㅠ.’

대기업 최 대리는 오늘도 간식을 먹을 때면 옆 부서에 이 대리가 있는지 살핀다. 평소엔 전혀 왕래가 없는 이 대리지만 먹을 것이 있을 때면 와서 친한척을 하며 간식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 해오면 이 대리는 자연스레 자기 책상의 종이컵을 가져와서 “최 대리, 커피 좀 나눠먹어도 괜찮지?”라며 커피의 3분의 1가량을 자신의 종이컵에 나눠 가져간다. 한두 번은 괜찮아도 1주일에 두세 번씩 당연하게 커피를 가져가는 모습을 보면 황당하다. 부서에 과자 등 간식이 있을 때도 어김없이 쿵쿵 거리는 그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 온다. “간식은 자기 돈으로 안 사면서 종이컵에 간식을 늘 꽉 채워놓는 것 보면 신기하다니까요.”

◆회사 매점에서 쇼핑을

대기업 개발팀의 김 과장은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얻어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회사 매점. 죽치고 있다 보면 누군가는 지나가기 때문이다. “한번은 매점에서 음료수 하나 사주겠다고 했는데 3만원어치를 고르더라고요. 며칠 먹을 간식을 한꺼번에 계산했나봐요. 그러면서 매점에 갈 때 과자 하나 사다달라고 부탁하면 꼭 돈 달라고 하는데 얄미워 죽겠어요.”

강영연/윤정현/정소람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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