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환율전쟁 '이중잣대'에 신흥국 뿔났다

입력 2013-02-12 16:42   수정 2013-02-13 04:58

위안화 등 가치 하락엔 "인위적" 비난…엔저엔 "적절" 칭찬

선진국 통화가치 하락
中·브라질 대응 모색
15일 G20 재무장관회의 주목




통화전쟁을 둘러싼 주요 국가들의 움직임이 점입가경이다. 미국과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달러와 엔화가치 하락, 유로화가치 상승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이 공식적으로 일본의 엔화가치 하락을 지지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독일 분데스방크는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강조하며 유로화가치 하락을 요구하는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국들은 선진국 통화가치 하락에 대응하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오는 15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통화가치를 둘러싼 각종 논란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중 잣대’ 들이대는 미국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국의 입장 변화다. 미국은 지금까지 중국 등 신흥국들의 통화가치 하락을 “인위적 통화가치 조정을 통한 수출 늘리기”라고 비판해 왔다. 라엘 브레이너드 미국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의 엔저(低) 용인 발언과 상반된다. 이 같은 미국의 입장 변화는 지난 6일 데이비드 립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의 일본 도쿄 방문에서부터 표면화됐다. 립튼 부총재는 “일본 경제가 만성적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한 2%의 물가 상승 목표는 적절한 것”이라며 일본의 통화정책에 힘을 실었다. IMF가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는 기구인 데다 립튼 부총재는 미국 재무부 차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외환시장은 이를 미국의 의중으로 해석했다. 이날 엔화가치가 2년9개월 만에 최저치인 94.05엔까지 하락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2일 “미국이 선진국과 신흥국의 통화정책에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물론 일본 등 다른 선진국의 통화가치 절하는 국내 금융안정 달성을 위해 정당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필립 힐더브랜드 부회장은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를 통해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이 재정 확장을 시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20년간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일본이 통화가치 절하를 하는 것도 정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국들 대응 움직임

미국과 일본의 이 같은 움직임에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했던 중국이 대응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14일 달러당 6.21위안으로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던 위안화 가치는 지난 11일에 작년 12월 말 수준인 6.22위안으로 완만하게 하락했다. CNBC는 “중국 인민은행이 별도의 발언 없이 직접적인 행동(인위적인 통화가치 인하)에 나섰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양적완화를 ‘환율 조작’이라고 비판해 온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도 지난 8일 “인위적인 통화 약세가 아니라 투자 확대를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침체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이라며 선진국들의 움직임을 비판했다.

중앙은행의 역할과 관련된 논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는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통화 약세를 이끌어내는 것은 중앙은행의 신뢰성에 타격을 준다”고 말했다. FT는 “바이트만 총재가 모스크바 G20 회의를 앞두고 미리 자신의 입장을 내놓은 것”이라고 했다. 15일 회의에서는 선진국과 신흥국들은 물론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중앙은행의 역할론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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