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기업인 생생토크 - 정을연 명진화학 사장
앞치마 두르고 장화 신고 도금현장서 직접 기술 개발
삼성·LG전자·현대차 등 유명 기업들이 고객
개성공단 본격 가동…동남아도 진출계획
2011년 5월 중순의 일요일 아침. 도금업체인 명진화학 정을연 사장(당시 44세)의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공장에서 또 불이 났습니다.”
자동차 운전대를 잡은 그는 인천 남동산업단지를 향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멀리서도 연기가 보였다. 화마에 휩싸인 공장은 이내 폭삭 내려앉았다. 망연자실했다. 불과 2개월 전에도 불이 나서 엄청난 피해를 보고 간신히 수습했는데 또다시 화재가 난 것이다. 이번에는 아예 공장이 내려앉았고 남의 공장으로도 불길이 옮겨붙었다. 두 번의 화재로 입은 피해액은 무려 180억원에 달했다. 연매출 400억원 안팎인 이 회사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액수였다.
“화재 현장을 보는 순간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고객과 종업원을 생각하니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지요.” 정 사장은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불과 21일 만에 공장을 재건하고 라인을 다시 깔아 생산을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해냈을까. 종업원들 모두 화재 직후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공장 안팎을 깨끗이 정리했다. 정 사장은 공장을 철거하면서 설비를 발주했고 곧바로 공장 기둥을 박기 시작했다. 서너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했다.
그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고객들의 얼굴이 떠올라 망연자실할 시간도 없었다”며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 반 뒤인 2012년 가을. 인천 검단산업단지에 첨단 도금공장이 들어섰다. 대지 7000㎡, 건평 1만1000여㎡의 번듯한 공장이다. 이 안에는 ‘릴투릴(Reel to Reel)’ 설비 31개 라인이 깔려 있다. 릴투릴 설비는 릴에 감겨진 커넥터 등 전자부품을 생산라인 반대쪽 릴로 연속해 보내면서 자동으로 도금할 수 있는 장치를 말한다.
도금액은 설비 안으로 흐르고 작업자는 외부에서 모니터를 통해 작업 상태를 감시하는 친환경 설비다. 불량이 생기면 모니터에 기록되면서 자동으로 사이렌이 울린다.
작년 12월 말 송영길 인천시장과 기업인 등 30여명이 이 공장을 방문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도금업체가 이렇게 청결하고 호텔급 시설을 갖출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기숙사나 식당, 피트니스클럽 역시 수준급이다.
이곳에서 도금하는 제품은 휴대폰 부품, 자동차 부품 등이다. 도금 재료는 금 은 주석 등이다. 정 사장은 “우리가 연간 사용하는 금과 은은 250억원어치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검단공장에 170명, 개성공단에 약 1000명을 두고 있다. 시설 면에서 국내 3대 도금업체에 든다.
뿐만 아니다. 고객은 삼성전자 LG전자 LG화학 현대차 기아차 LS엠트론 히로세코리아 등 굴지의 업체들이다. 정 사장은 “매출은 2010년 450억원에 달했다가 이듬해 화재로 330억원으로 줄었으나 지난해는 약 380억원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부터는 검단공장이 본격 가동에 들어감에 따라 더욱 빠른 속도로 매출이 늘 것”으로 내다봤다.
어떻게 이 회사는 국내 굴지의 도금업체로 성장했을까. 첫째, 26년간 이어져온 한 우물 경영 덕분이다. 이 회사를 일군 정 사장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
논산공고 전기과를 나온 그는 18세인 1985년 경기 부천 원미동의 도금공장에 입사했다. 매형인 장수일 명예회장이 1983년 창업한 업체다. 당시 33㎡ 규모의 도금공장 임직원은 모두 3명이었다. 매형과 영업담당인 누나, 그리고 생산직 근로자인 정 사장이었다.
정 사장은 앞치마를 두르고 장화를 신은 채 도금 작업을 했다. 크롬·니켈·주석 도금 등을 했다. 주로 액세서리를 표면처리하거나 군납용 금속 제품에 대한 도금 일을 했다. 방위로 군복무를 하면서도 저녁에는 공장으로 달려와 일했다. 그는 일단 일을 하면 미치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어떤 때는 일감이 몰려 하루에 두세 시간씩 자면서 한 달간 일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둘째, 다양한 기술 개발이다. 그는 도금 분야에서 개발할 게 많다고 생각했다. 2000년 사장을 맡은 뒤엔 기술 개발에 본격 나섰다. 정 사장은 “2003년 ‘릴투릴 자동도금 및 부분도금과 관련된 특허’를 비롯 3건의 특허를 얻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내 기술연구소를 만들어 12명의 연구원을 두고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한국폴리텍대 재능대 등과 산학협력을 통해 연구에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셋째, 과감한 설비투자다. 그는 2008년 개성공단에도 도금공장을 세웠다. 초창기 인원은 360명이었으나 지금은 도금 및 전자부품을 포함, 약 1000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다. 정 사장은 “개성공단은 이직이 없고 인건비가 저렴해 경쟁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검단공장을 지어 본사를 인천 남동산업단지에서 이전했다. 검단공장은 작년 완공했고 오는 3월까지 남동공장의 시설을 완전히 옮길 예정이다. 정 사장은 “개성공단과 검단공장에 총 430억원을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꿈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지금 매출에서 직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3% 선에 머물고 있다. 주로 중국 휴대폰업체들이 부품의 정밀 도금을 의뢰해오는 것들이다. 정 사장은 “앞으로 수출 비중을 늘리는 한편 2015년께 동남아에 도금공장을 세울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이 지역에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전자부품업체들의 도금 수요를 충족시킬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도금과 생산, 환경오염 방지 등 세 가지 핵심기술에서 일본 기업에 뒤지지 않는다”며 “일본 기업과 해외 시장에서 진검승부를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종업원 건강해야…기숙사·헬스장·식당도 '럭셔리'
정을연 사장은 자신을 ‘도금업계에서 가장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게 도금업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경영신조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이다. ‘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의미다.
정 사장이 건설한 검단공장은 생산라인만 청결한 게 아니다. 그는 “기숙사 식당 피트니스클럽 등 모든 것을 호텔급으로 갖췄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금공장을 짓는 데 뭐 그렇게 돈을 들이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마음가짐이 없으면 세계 일류 도금업체로 성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도금은 가장 열악한 업종 중 하나다. 그는 “종업원들이 언제까지 나쁜 환경에서 일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깨끗한 환경에서 일하고 잘 먹고 건강해야 좋은 품질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현장 근로자 출신이어서 이들의 애로를 잘 알고 있기도 하다.
그는 “정부가 뿌리산업 육성법을 제정하고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를 만들어 뿌리산업 시설개선 등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정 사장은 “로드맵이 차질 없이 시행되면 도금과 열처리 등 6대 뿌리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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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전자·현대차 등 유명 기업들이 고객
개성공단 본격 가동…동남아도 진출계획
2011년 5월 중순의 일요일 아침. 도금업체인 명진화학 정을연 사장(당시 44세)의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공장에서 또 불이 났습니다.”
자동차 운전대를 잡은 그는 인천 남동산업단지를 향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멀리서도 연기가 보였다. 화마에 휩싸인 공장은 이내 폭삭 내려앉았다. 망연자실했다. 불과 2개월 전에도 불이 나서 엄청난 피해를 보고 간신히 수습했는데 또다시 화재가 난 것이다. 이번에는 아예 공장이 내려앉았고 남의 공장으로도 불길이 옮겨붙었다. 두 번의 화재로 입은 피해액은 무려 180억원에 달했다. 연매출 400억원 안팎인 이 회사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액수였다.
“화재 현장을 보는 순간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고객과 종업원을 생각하니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지요.” 정 사장은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불과 21일 만에 공장을 재건하고 라인을 다시 깔아 생산을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해냈을까. 종업원들 모두 화재 직후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공장 안팎을 깨끗이 정리했다. 정 사장은 공장을 철거하면서 설비를 발주했고 곧바로 공장 기둥을 박기 시작했다. 서너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했다.
그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고객들의 얼굴이 떠올라 망연자실할 시간도 없었다”며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 반 뒤인 2012년 가을. 인천 검단산업단지에 첨단 도금공장이 들어섰다. 대지 7000㎡, 건평 1만1000여㎡의 번듯한 공장이다. 이 안에는 ‘릴투릴(Reel to Reel)’ 설비 31개 라인이 깔려 있다. 릴투릴 설비는 릴에 감겨진 커넥터 등 전자부품을 생산라인 반대쪽 릴로 연속해 보내면서 자동으로 도금할 수 있는 장치를 말한다.
도금액은 설비 안으로 흐르고 작업자는 외부에서 모니터를 통해 작업 상태를 감시하는 친환경 설비다. 불량이 생기면 모니터에 기록되면서 자동으로 사이렌이 울린다.
작년 12월 말 송영길 인천시장과 기업인 등 30여명이 이 공장을 방문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도금업체가 이렇게 청결하고 호텔급 시설을 갖출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기숙사나 식당, 피트니스클럽 역시 수준급이다.
이곳에서 도금하는 제품은 휴대폰 부품, 자동차 부품 등이다. 도금 재료는 금 은 주석 등이다. 정 사장은 “우리가 연간 사용하는 금과 은은 250억원어치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검단공장에 170명, 개성공단에 약 1000명을 두고 있다. 시설 면에서 국내 3대 도금업체에 든다.
뿐만 아니다. 고객은 삼성전자 LG전자 LG화학 현대차 기아차 LS엠트론 히로세코리아 등 굴지의 업체들이다. 정 사장은 “매출은 2010년 450억원에 달했다가 이듬해 화재로 330억원으로 줄었으나 지난해는 약 380억원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부터는 검단공장이 본격 가동에 들어감에 따라 더욱 빠른 속도로 매출이 늘 것”으로 내다봤다.
어떻게 이 회사는 국내 굴지의 도금업체로 성장했을까. 첫째, 26년간 이어져온 한 우물 경영 덕분이다. 이 회사를 일군 정 사장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
논산공고 전기과를 나온 그는 18세인 1985년 경기 부천 원미동의 도금공장에 입사했다. 매형인 장수일 명예회장이 1983년 창업한 업체다. 당시 33㎡ 규모의 도금공장 임직원은 모두 3명이었다. 매형과 영업담당인 누나, 그리고 생산직 근로자인 정 사장이었다.
정 사장은 앞치마를 두르고 장화를 신은 채 도금 작업을 했다. 크롬·니켈·주석 도금 등을 했다. 주로 액세서리를 표면처리하거나 군납용 금속 제품에 대한 도금 일을 했다. 방위로 군복무를 하면서도 저녁에는 공장으로 달려와 일했다. 그는 일단 일을 하면 미치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어떤 때는 일감이 몰려 하루에 두세 시간씩 자면서 한 달간 일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둘째, 다양한 기술 개발이다. 그는 도금 분야에서 개발할 게 많다고 생각했다. 2000년 사장을 맡은 뒤엔 기술 개발에 본격 나섰다. 정 사장은 “2003년 ‘릴투릴 자동도금 및 부분도금과 관련된 특허’를 비롯 3건의 특허를 얻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내 기술연구소를 만들어 12명의 연구원을 두고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한국폴리텍대 재능대 등과 산학협력을 통해 연구에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셋째, 과감한 설비투자다. 그는 2008년 개성공단에도 도금공장을 세웠다. 초창기 인원은 360명이었으나 지금은 도금 및 전자부품을 포함, 약 1000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다. 정 사장은 “개성공단은 이직이 없고 인건비가 저렴해 경쟁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검단공장을 지어 본사를 인천 남동산업단지에서 이전했다. 검단공장은 작년 완공했고 오는 3월까지 남동공장의 시설을 완전히 옮길 예정이다. 정 사장은 “개성공단과 검단공장에 총 430억원을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꿈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지금 매출에서 직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3% 선에 머물고 있다. 주로 중국 휴대폰업체들이 부품의 정밀 도금을 의뢰해오는 것들이다. 정 사장은 “앞으로 수출 비중을 늘리는 한편 2015년께 동남아에 도금공장을 세울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이 지역에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전자부품업체들의 도금 수요를 충족시킬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도금과 생산, 환경오염 방지 등 세 가지 핵심기술에서 일본 기업에 뒤지지 않는다”며 “일본 기업과 해외 시장에서 진검승부를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종업원 건강해야…기숙사·헬스장·식당도 '럭셔리'정을연 사장은 자신을 ‘도금업계에서 가장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게 도금업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경영신조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이다. ‘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의미다.
정 사장이 건설한 검단공장은 생산라인만 청결한 게 아니다. 그는 “기숙사 식당 피트니스클럽 등 모든 것을 호텔급으로 갖췄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금공장을 짓는 데 뭐 그렇게 돈을 들이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마음가짐이 없으면 세계 일류 도금업체로 성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도금은 가장 열악한 업종 중 하나다. 그는 “종업원들이 언제까지 나쁜 환경에서 일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깨끗한 환경에서 일하고 잘 먹고 건강해야 좋은 품질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현장 근로자 출신이어서 이들의 애로를 잘 알고 있기도 하다.
그는 “정부가 뿌리산업 육성법을 제정하고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를 만들어 뿌리산업 시설개선 등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정 사장은 “로드맵이 차질 없이 시행되면 도금과 열처리 등 6대 뿌리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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