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대공황 원인은 자본주의 폐단이 아닌 자연적인 경기순환 과정
규제·방만한 통화제도, 기업 혁신 어렵게 해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귀족과 재혼한 가정에서 자라난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A. Schumpeter). 그가 평생 연구한 주제는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라는 거대담론이었다.
경제학의 세계적 중심지였던 빈대학을 졸업한 슘페터가 그런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젊은 시절에 목격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눈부신 경제 발전 때문이었다. 두 나라는 1870년과 40년 뒤인 1910년을 비교하면 경제 규모가 3배 이상 커졌다.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빠르게 높아졌다. 슘페터는 그런 경제 발전의 배경에는 사유재산권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슘페터는 경제 발전을 이끄는 힘의 원천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자본주의는 실패할까’ ‘불황을 우려해야 하나’ ‘자본주의는 살아남을까’ 등과 같은 당시 사회적 이슈의 의문점을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목을 끄는 것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은 경제 밖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경제 내부에 있다는 슘페터의 통찰이다. 자본주의 자체에 변화의 에너지가 내재돼 있다는 얘기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기업가’를 발견하고는 흥분했다. ‘기업가’가 바로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슘페터는 기업가이론 개발에 몰입했다. 기업가란 신상품, 신기술 등 혁신을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주체다. 기업가는 열린 마음, 리더십, 통찰력 등 ‘엘리트적 자질’을 갖고 있다고 한다. 아무나 기업가가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기업가란 돈벌이에만 급급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기업가이론의 시각에서 본 슘페터의 자본주의 비전은 다양하다. 슘페터에게 자본주의는 산업혁명, 철도, 값싼 자동차, 비행기같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기계처럼 보인다. 1990년대 인플레이션 없는 신경제를 부른 것도 정보기술(IT) 혁신의 결과다. 혁신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슘페터의 낙관론이다. 대기업 권력도 문제될 게 없다. 규모의 경제나 혁신으로 소비자들이 이익을 본다는 이유에서다. 장기적으로 소득은 올라가고 상품가격은 내려가는, 그래서 노동자 삶을 비롯해 대중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는 체제가 자본주의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게 자본주의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자본가-노동자 계급 구분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마르크스처럼 엉뚱한 계급의식으로 노동자를 선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문명적 성격을 낙관하는 슘페터는 ‘문제는 정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발전의 동력을 침해하고 변화를 가로막는 것, 혁신을 거역하는 것, 기업가 정신에 피해를 주는 것은 모두 정치에서 비롯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기업가이론에 비춰 호황-불황의 순환을 해석하는 슘페터의 관점도 독보적이다. 기업가의 혁신으로 이윤이 높아지면 많은 기업들이 그 혁신기업의 전략을 경쟁적으로 모방해 추격하면서 경제 붐이 생겨난다. 그런 경쟁적인 행동으로 가격과 이윤이 떨어지고 불경기가 등장하는데, 이는 다음 나타날 붐의 시작이라는 게 그의 경기순환론 핵심이다. 불황은 호황으로 방만하게 몰려든 기업들을 정리해주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래서 증권시장의 붕괴나 경제위기는 일시적 현상으로, 놀랄 일이 아니라고 슘페터는 설명한다. 1929년 세계공황도 자본주의의 병리(病理)가 아니라 흔히 있을 수 있는 경기 하강인데, 케인스처럼 호들갑을 떨지 말라고 일침을 가한다.
혁신을 실행하기 위해선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슘페터는 은행이 이 같은 자금조달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슘페터는 저축을 초과하는 방만한 신용창출(대출)의 위험성을 간과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신용팽창으로 조성된 호황은 잘못된 투자를 불러오고 많은 혁신적 사업들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비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일본의 장기불황 등도 그 같은 방만한 통화팽창의 결과라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인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가의 혁신으로 자본주의가 눈부신 성공을 거두지만 그 성공으로 자본주의가 몰락하고 사회주의가 도래한다고 슘페터는 주장한다. 기업가 기능이 사멸하고 대신 거대기업의 경영팀이 기업가 기능을 넘겨받음으로써 혁신이 관료화된다는 이유에서다. 지식인들의 반(反)자본주의 태도가 사회주의를 부추긴다고도 했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불확실성이 없고 효율적이어서 그 체제가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주의는 가격이 없기 때문에 어디에 얼마만큼을 투자할 것인가와 같은 경제 계산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사회주의도 불가능하다는 미제스의 인식을 간과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회주의가 도래한다는 슘페터의 예측도 결국은 빗나갔다. 이는 자본주의 혁신 과정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잘 기능한다는 증거다.
슘페터 사상은 여러 가지 비판의 여지를 남기긴 했지만 경제학을 넘어선 학제융합적인 그의 사상은 원대하고 심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가이론을 개발해 자본주의를 새롭게 이해한 그의 공로는 독보적이었다.
슘페터 사상의 힘 - 90년대 동유럽 국가…경제체제 개혁이 입증
조지프 슘페터는 야심가였다. 그러나 비운의 실패가 이어졌다. 빈에서 사교계의 1인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외출하려면 치장하는 데 한 시간 이상을 썼다. 그러나 그는 트러블 메이커였다. 유능한 정치가가 되겠다는 꿈도 가졌다. 36세의 젊은 나이에 재무부 장관이 됐다. 경제난을 극복하는 데 실패하고 애석하게도 7개월 만에 해임됐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가 되겠다는 야심에서 경제학에 입문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을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업과 빈곤이란 고통을 안겨준 경제위기를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의 사상을 주목할 이유가 없었을 터였다.
오늘날 그의 사상은 새롭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혁신, 기업가 정신, 경영전략, 창조적 파괴 등 그가 100년 전에 던진 개념들은 정보기술, 세계화, 벤처산업 등 역동적으로 변하는 세계를 이해하고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제공한다.
슘페터의 사상은 시장경제의 구조 변화를 새로이 조명하려는 진화경제학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변동이 없는 상태만을 기술하는 균형이론을 극복하고 경제 내부 자체에서 생겨나는 변화를 설명할 통찰을 제공한 것이 슘페터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균형이론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슘페터와는 달리 진화이론은 균형 자제를 부정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경기 침체 극복은 물론이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은 수요 처방이 아니라 공급 측에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도 슘페터의 통찰이 아닐 수 없다. 규제가 적고 정부 지출이 적을수록, 다시 말해 경제적 자유가 많을수록 경제성장이 높다는 인식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것도 슘페터다. 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가적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틀을 모색하는 현대 경제정책의 이론적 기초도 슘페터의 사상이 제공했다.
슘페터의 사상이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는지는 옛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이 입증한다. 사회주의의 승리는 불가피하다고 선언했던 슘페터가 자본주의를 부활시키는 영웅이 된 곳이 바로 옛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다. 1990년 이래 그 나라들 곳곳에서는 ‘슘페터의 기업가’가 등장해 사회주의 때문에 쓰러진 산업의 창조적 파괴를 일으켜 슘페터가 말한 호황 과정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민경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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