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 지형도가 바뀐다 ②] 국내 대학 30% 없어진다는데, 어디지?

입력 2013-02-18 09:46   수정 2013-02-18 17:50


① '서울대=무조건 1위' 공식 깨졌다 … "평판보다 평가" 지각변동
② "2020년 대학, 신입생이 모자란다" 덩치 줄이고 강해져야 생존
③ 칼텍 웰즐리대 꿈꾼다 … 노벨상 힐러리 배출 노하우 '벤치마킹'
④ 탈(脫)규모 서강대 포스텍 한동대 울산대 금강대 주목받는 이유
⑤ 이대 프리미엄 NO! '적자생존' 7곳 남은 여대들 더 뜨겁게 경쟁


대학도 구조조정 시대다. 국내 대학들은 2020년 이전 '신입생 가뭄'을 겪을 전망이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수가 전국 대학의 총 입학정원보다 줄어들기 때문. 대학은 몸집을 줄이고 더 강해져야 살아남는다. 창의적인 우수 인재를 길러내 미래 먹을거리를 마련해야 하는 소임도 있다. 삼성전자가 애플과, 현대자동차는 도요타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처럼 국내 대학도 공고한 서열을 깨고 세계 무대에서 하버드, 케임브리지 등과 겨뤄야 할 때다. 우리 대학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변화 방향을 5회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 주>

#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20일 전북 남원 서남대 의대 졸업생 134명의 의학사 학위 취소를 명령했다. 특별감사 결과 학교법인의 부실 운영으로 의학 임상실습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해 전국 병원 인턴과 레지던트 등으로 근무하던 졸업생들은 사상 초유의 의사 면허 취소 위기에 내몰렸다.

# 한 주 뒤엔 경북 소재 전문대인 포항대의 '학생 장사'가 구설수에 올랐다.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던 이 대학은 인근 고교 3학년 부장교사들에게 뒷거래를 제안했다. 고3 수험생을 포항대에 지원하게 하는 대가로 학생 1인당 20만 원씩을 해당 교사에게 건넨 것. 검찰은 "대학 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해 불법 수단을 동원하는 대학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대학도 문 닫는 시대가 왔다. 부실한 운영(서남대)과 입학자원 부족(포항대)이 가장 큰 이유다. 교육 당국은 2011년 7월 대학구조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켜 본격적인 대학 구조조정에 나섰다. 선제적으로 부실한 대학을 골라내고 정리하는 작업을 통해 충격파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교과부는 수년 내에 이른바 '대학 버블'이 꺼질 것으로 예상했다.

◆ 저출산 영향 입학자원 감소… 2018년께 수요-공급 '역전현상'

대학구조개혁위 출범 후 1년6개월 동안 퇴출된 대학은 모두 5곳이다. 명신대·선교청대·성화대·벽성대 4개 대학이 강제 폐쇄됐다.

건동대는 자진 폐교를 결정했다. 같은 기간 대학구조개혁위는 퇴출 1순위 후보군인 '경영부실 대학'도 21곳을 지정했다.

통칭 '부실 대학'은 학생 취업률, 충원율 같은 대학 운영 건전성을 가늠하는 평가지표를 적용해 매년 하위 15%(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를 가려낸다.

이 가운데 부실 정도가 심한 곳은 '학자금대출 제한대학'을 거쳐 구조개혁 우선 대상인 경영부실 대학으로 선정된다. 경영부실대학엔 컨설팅 등 회생 기회를 준 뒤 개선 권고 기준치에 못 미칠 경우 퇴출 절차를 밟게 된다. <그래픽 참조>

또한 중대 부정·비리를 저지른 대학의 경우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감사를 실시, 퇴출시킬 수 있도록 했다.

정부가 칼을 빼든 것은 저출산으로 인한 학생 수 감소 때문이다. 고교 졸업자 수는 2012년 67만 명에서 2018년 58만 명으로 감소한다. 수험생 수가 계속 줄면서 2018년을 기점으로 대학 총 입학정원 58만 명(2010년 기준)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하단 표 참조>

이렇게 되면 대입 정원이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산술적으로는 2020년 무렵엔 재수생이 사라진다. 고교 졸업 수험생 수보다 대입 정원이 많아져 수요와 공급이 역전되기 때문이다. 입시 풍속도 역시 '대입 경쟁'이 아닌 '학생 유치 경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2020년대가 되면 현재 대학의 30% 가량이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학생이 모자란다, 지방·군소·사립대부터 차례로 위기 '도미노'

지방대는 이미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인해 학생 모집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최근 수험생들의 수도권 대학 선호 경향이 뚜렷하다" 며 "원활한 학생 수급 마지노선은 수도권과 가까운 충청권이나 춘천에 위치한 대학 정도"라고 말했다.

지방대 교수들은 일선 고교를 돌며 신입생을 유치하는 게 예삿일이 됐다. 호남 지역 한 사립대 교수는 "연구나 강의보다 학생 유치가 더 큰 업무인 실정" 이라며 "일부 지방대는 총장까지 고교를 방문해 입시설명회를 여는 등 정원 채우는 게 최대 업무가 됐다"고 털어놨다.

전국 340여개 4년제 대학과 전문대가 '서울대'(서울에 있는 대학) '서울약대'(서울에서 약간 먼 대학) '서울상대'(서울에서 상당히 먼 대학) 세 가지로 분류된다는 자조적 우스갯소리도 흘러나왔다. 지방대 관계자들은 "학생 부족은 지방대만의 일이 아니다" 며 "수년 내 대부분 국내 대학들이 직면할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이 고교 진학교사 접대에 신경 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수도권 한 대학은 최근까지 교비로 인근 고교 교사들을 방학마다 중국으로 여행을 보내주곤 했다.

명목은 캠퍼스 탐방이었지만 접대 성격이 짙었다. 영남 소재 한 사립대도 방학 중 입시홍보 행사를 진행하며 초청 교사들에게 숙식과 기념품을 제공하는 등 편의를 봐줬다.

서울권 대학이라고 해서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찌감치 대학 경영에 '고객만족(CS)' 개념을 도입한 동국대는 정기적으로 고교 교사들을 상대로 만족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사 결과는 학교 브랜드 파워와 이미지 제고를 위한 자료로 활용한다. 우수 신입생 유치를 위해 고교를 고객으로 상정하고, 수요자 만족도 상승을 위해 노력하는 사례로 꼽힌다.

◆ 정원 줄이고 대학끼리 통합 "자구책 없으면 구조조정 당한다"

대학 생존의 관건은 결국 조직 슬림화에 달려 있다. 정원 축소, 선택과 집중 원칙을 통해 '작고 강한 대학'을 만드는 게 첫 번째. 두 번째가 대학 간 통폐합이다. 스스로 대학 규모와 숫자를 줄이지 않으면 앞으로 몇 년 새 구조조정 대상으로 내몰릴 여지가 크다.

교과부가 공개한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에서 벗어난 대학 자구 노력' 사례를 보면 전북 익산 원광대는 입학정원을 10.3%, 대전 목원대는 16.9% 감축했다. 또한 원광대는 6개 학과를 폐과하고 5개 학과를 통폐합했다. 목원대도 학사 구조조정(3개 학과 폐지)을 단행했다.

대학 간 통합 활성화도 한 방안이다. 자발적 구조개혁 롤모델로 평가받는 가천대(사진)가 대표적이다. 현재의 가천대는 총 4개 대학이 통합된 결과물. 2006년 가천의대와 가천길대학을 합쳐 가천의과학대가, 2007년 경원대와 경원전문대학이 통합돼 경원대가 됐다. 이어 2011년 가천의과학대와 경원대를 통합해 가천대로 탈바꿈했다.

같은 재단 산하 학교를 연이어 통합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이시우 서울여대 교수(연구책임자)는 지난해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정책연구 최종보고서' 에서 "무리한 구조조정보다 동일 사학 법인이 운영하는 대학 통합부터 우선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며 "타 법인 간 통합에 비해 비용 절감 효과가 있고 구성원 처리 문제도 용이하다" 고 덧붙였다.

구조조정 원칙이 확고하고 이미 5곳이 퇴출된 만큼 대학들 스스로 변화해야 할 시점이 됐다. 교과부 제2차관을 지낸 김중현 연세대 교수는 "정부도 중대 부정·비리를 저지른 몇몇 대학을 제외하면 강제 퇴출은 어렵지 않겠느냐" 며 "시장경쟁 원칙 가운데 대학이 자율적으로 바뀌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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