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독일의 에너지 딜레마

입력 2013-02-19 16:57   수정 2013-02-19 21:54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독일 정부가 에너지에 발목을 잡혔다. 2년 전 에너지 혁명(energiewende)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공급 정책에 올인한 독일이다.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고 원자력 발전을 중단한다는 목표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두 배 이상 올라간 전기요금에다 지자체들의 수익성 시비등 이곳저곳에서 불협화음이 들린다.

독일 기업들은 경쟁력이 없어졌다며 반발한다. 아예 독일을 떠나겠다는 회사도 나오고 있다. 영국의 주간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정부가 추진한 에너지 대전환 정책은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 내분으로 좌절될 모양”이라며 비꼬는 정도다.

기업 "원전 포기에 경쟁력 추락"

독일의 재생에너지법은 태양광이나 풍력 기업에서 생산된 에너지를 그 지역의 전력회사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매입 가격이 평균 가격을 넘을 경우 차액만큼 국민과 기업에서 부담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생산하는 에너지 비용은 원가를 훨씬 뛰어넘는다. 초기 투자 비용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태양광의 경우 투자금 회수가 아직 4.5~8.7%에 불과하다. 자연스레 독일 국민들이 100㎾당 평균 5유로의 부담금을 내야 한다. 올해 부담금은 지난해에 비해 50% 늘 것이라고 한다. 내년에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이를 틈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 주변 국가들은 인근 지자체에 전력을 팔아먹기에 바쁘다. 체코는 올해 독일 부근인 테메린에 원전발전소를 건설할 것이라고 밝힐 정도다.

더구나 E.on 등 원전 기업들은 원전 중단에 따른 손실을 보상해달라는 법정 소송까지 하고 원자력 단체와 우파 정당들이 원전 폐쇄 시한을 당초보다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국민들의 56%가 재생에너지 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9월엔 독일 총선이 있다. 집권 메르켈 정부로선 에너지 문제가 선거의 큰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작 독일 원자력계가 우려하는 것은 원전 중단으로 인한 기술개발의 지체와 인력 부족 현상이다. 2000년 이후 원자력 인력은 급격히 줄어 원자력 박사 배출이 한 해에 10명을 넘지 못한다. 1993년 4만명에 달했던 기능 인력도 지금은 거의 고갈 상태다.

소형화 경량화 추세 선도해야

원자력 개발 경쟁에 뒤처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독일 원자력계가 분개한다. 이미 소형화 경량화 경쟁이 한창인 원자력 시장이다. 자본 투자도 많지 않고 리스크도 별로 없는 비즈니스다. 오바마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4억5000만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도시바 등 일본의 전자회사까지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소형원자로를 위해 테라파워란 회사를 설립했다. 심지어 휴대용 원자력 얘기가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에너지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런 상황에 독일이 제외되고 있는 것이다. 랄프 귈드너 독일 원자력포럼 이사장은 미래에 독일경제 경쟁력을 위해선 원자력 혁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원전 기술과 원자력 인력에 경쟁력이 있는 한국이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아직 에너지 정책에 대해 분명한 방향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미국 셰일가스를 값싸게 들여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보인 것처럼 녹색성장의 허구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바란다. 이상도 필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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