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 나를 깨우자] 개그맨 김영철 씨 "영어의 바다서 길어올린 새 재능…제2인생 활짝 폈죠"

입력 2013-02-20 15:30  

자전 에세이 '일단, 시작해' 펴낸 개그맨 김영철 씨

짐 캐리 같은 배우 되고파…10년 전 영어학원 등록
학습서 출간·대학강의까지 척척…꿈 있다면 일단 시작하세요



개그맨 김영철 씨(39)는 멀티플레이어다. 개그는 기본이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대학에서 강의도 한다. 책도 여러 권 썼다. 1999년 KBS 공채 14기로 개그를 시작한 그를 이렇게 만든 건 영어다. 이미 방송을 통해 알려진 대로 그는 2003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코미디 패스티벌에 참가했다가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 자신에게 좌절했다. 하지만 이때의 좌절이 그를 확 바꿔놓았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빌 코스비, 짐 캐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적인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을 품은 그는 귀국하자마자 영어학원 새벽반에 등록해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영어공부에 매달린 지 10년. 그에겐 ‘영어 잘하는 개그맨’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학원가에서도 실력 있는 영어 전도사로 통한다. 영어 관련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영어 학습서와 번역서를 4권이나 낸 김씨가 이번에는 꿈을 향한 자신의 도전기를 담은 자전 에세이《일단, 시작해》(한국경제신문 한경BP 펴냄)를 내놓았다. 개그맨 공채 합격 순간부터 방송인과 강사로 자리 잡은 후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꿈꾸는 현재까지의 삶을 소박한 문체로 풀어놓은 이 책은 그가 20~30대 젊은이들에게 전해주는 희망의 메시지다. 책을 낸 그의 소감은 어떨까.

“성공담을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 대신 꿈을 이야기하는 에세이 스타일을 택했는데 첫 에세이여서 책이 나오기까지 녹록지 않았지만 결과물을 보니 뿌듯해요.”

스스로를 ‘대기만성형’이라고 부르는 그는 “아직도 강호동, 유재석과 같은 1인자는 아니지만 재미있게 배우다 보니 어느 순간 총알 없는 전쟁터에서 김영철이란 이름으로 서게 됐다”라고 자신의 삶을 평가했다. 그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준 영어는 방송활동이 주춤했을 때 그가 찾은 돌파구였다.

“방송이 별로 없던 시기에 영어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 이성미 선배가 ‘일이 줄었을 때 더 열심히 해야 일이 는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어요. 영어를 배우다 보니 프로그램이 하나에서 두 개, 세 개로 늘더라고요. 결국 책을 내고, 영어방송까지 하게 됐죠.”

그의 코믹한 이미지와 개그 감각은 영어를 익히는 것은 물론 자신의 영어 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처음 영어학원에서 마야라는 매력적인 여성 강사에게 배울 때 일이다. 김씨는 “I am a comedian, not Canadian”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같은 반 동료는 웃음을 터뜨렸으나 외국인인 마야는 웃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중에 김씨가 코미디언이라는 걸 안 마야는 “Oh my god!”을 연발하며 따지듯 물었다. 왜 코미디언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김씨가 “첫날 자기소개할 때 이야기했잖아”라고 하자 마야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난 그게 그냥 코미디인 줄 알았지.”

그가 끊임없이 배움의 길을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은 데뷔 때부터 몸에 밴 성실함이었다. 그는 “이 얼굴로 장동건과 똑같이 8시간 자면 안 된다는 걸 일찍 깨쳤다”며 “부지런한 게 내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잠을 줄이고 영어학원을 아침반으로 옮겼다. 동선을 최소화하며 영어를 배우고 운동도 했다. 주위에서 “너처럼 시간을 나노 단위로 쪼개 쓰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다.

영어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김씨에게 어느 날, 그의 영어멘토가 대학에서 영어 강사를 해보라고 제안했다. 학위도 없고 누구를 가르쳐 본 경험도 없는데 대학강사라니…. 주저하던 그에게 멘토는 이런 말로 용기를 주었다. “영철아, 지금처럼 사는 것도 좋지만 네가 꿈꾸었던 영어의 세계에서 한 번쯤 가슴 떨리는 삶을 살아보고 싶지 않니?”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그는 강연자로서 또 다른 재능도 발견했다.

“지난 14년을 돌아보면 재미있었던 일도 많았지만 쉽지 않았던 순간도 많았어요. 어려운 순간을 이기는 데 어머니가 물려주신 긍정적인 DNA가 큰 힘이 됐죠. 어머니는 슬픈 날이 있어도 다 잊어버린다고 하시거든요. 나쁜 일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더 잘될 거라고 항상 생각합니다.”

이제껏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아직도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나이가 들어 열정이 사라지고 권태가 오는 것. 세계적인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를 위해 잠시 쉬었던 영어학원도 다음달부터 다시 다닐 계획이다. 그는 꿈을 앞에 놓고 망설이는 이들에게 주저없이 말한다. 일단 시작하라고.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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