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2명 임차공장서 창업…초창기엔 불량 많이 생겨 고전
생산기술硏·대학 박사급과 산·학·연 협력으로 첨단장비 개발
이젠 美·獨 등 선진국에 역수출
"용접 잘못되면 완제품에 큰 문제…기술 개발 중요성 잊은적 없어"
용접은 금속을 붙이는 작업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용접이 없으면 자동차 조선 플랜트 산업은 존재할 수 없다. 서울 가산동에 있는 파워웰(사장 은종목·55)은 미국 독일 일본 등이 장악한 용접기의 국산화에 나서고 있는 업체다. 동시에 이들 지역으로 역수출하고 있다. 종업원 30여명인 이 회사의 제품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외환외기 직후인 1998년 초. 은종목 파워웰 사장은 망연자실했다. 손에 쥔 어음 20여장이 모두 휴지로 변한 것이다. 거래처가 전부 부도난 데 따른 것이다. 눈물이 나와도 시원치 않았지만 그는 너무 어이없어 쓴웃음만 나왔다. 부도 맞은 금액은 약 5억원. 당시 이 회사 1년 매출의 약 절반에 이르렀다.
더욱 큰 문제는 주문이 사라진 것이다. 외환위기 여파로 기업 부도가 늘어나고 설비투자는 격감했다. 용접 수요가 있을 리 없었다. 용접은 자동차 조선 플랜트 중장비 건설과 일반 산업현장에서의 수요가 주종을 이루는데 냉각된 경기 때문에 수주가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직원을 15명에서 5명으로 줄였다. 일감이 없어 생산직원들을 전부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연구·개발 인력만은 남겨뒀다. ‘농부가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잔다’는 속담대로였다. 연구·개발은 이 회사의 씨앗이었다. 이를 토대로 후일을 기약한 것이다. 그 뒤 1년여 만에 퇴직자 몇몇은 복귀했다.
은 사장은 “창업한 뒤 10년 가까이 기술을 개발하고 외국 제품을 국산화해왔는데 외환위기 때는 너무 힘들었다”며 “그런 가운데서도 기술개발의 중요성은 잊지 않았고 이게 꾸준한 성장의 밑바탕이 됐다”고 회고했다.
서울 가산동 가산디지털단지역 부근에 있는 파워웰은 각종 용접기를 만든다. 이 회사에 들어서면 사무실과 연구실이 있다. 연구실 문을 열면 바로 생산현장이다. 이곳에서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플라즈마절단기의 조립이 한창이었다. 한쪽에선 파란 불꽃과 함께 용접기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은 사장은 “인버터 플라즈마 절단기를 국산화한 것을 비롯해 LG전자에 용접 자동화 설비를 공급했고 미국에 용접기를 수출하는 등 숨가쁘게 달려왔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동 플라즈마 용접기를 개발해 한국가스공사에 납품하고 한국형 액화천연가스(LNG) 육상탱크의 용접공사를 완료했다. 원자력용 원통드럼 플라즈마 용접자동화 설비도 납품했다. 아울러 인버터 스포트 용접기와 광통신 디지털용접기를 개발하는 등 각종 첨단 용접기를 개발했다. 이 회사 사무실 벽면에는 특허증 등 20여건에 이르는 지식재산권 관련 인증서가 빼곡히 붙어 있다.
은 사장은 “용접이 잘못되면 완제품에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용접은 무척 중요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컨대 고압 탱커의 용접 부분에 균열이 생기면 가스가 새어나와 폭발할 수도 있고 선박의 용접이 잘못되면 물이 새거나 선박 자체가 깨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이런 다양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24년간 용접 외길을 걸으면서 쌓은 노하우다. 은 사장은 경북공고를 졸업하고 하이닉스와 대영전자에서 근무했다. 이때 방산장비 국산화에 관여하면서 인버터 용접기와 전원공급장치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89년 부천에서 2명의 직원과 함께 60㎡ 남짓한 임차공장에서 창업해 용접기 국산화에 나섰다. 이때가 32세였다. 은 사장은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미국 독일 등지에서 용접기를 수입해 사용했는데 이를 국산화하면 절반 이하의 가격에 공급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렵게 개발했어도 현장에선 채택해주지 않았다.
현장의 용접사들은 자신의 장비에 애착이 있어 다른 장비로 바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이들을 설득해 국산 장비를 팔았는데 초창기에는 불량이 많이 생겨 제품 개발이나 영업보다 AS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은 사장은 “제품 개발 후 몇 년이 지나자 품질이 안정되고 수요처도 늘었는데 외환위기 여파로 또다시 어려움을 맞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현장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20여년의 연륜이 쌓이면서 나름대로 영역을 개척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둘째, 산·학·연 협력을 통한 연구·개발이다. 그는 연구·개발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은 사장은 “박사급 연구원을 채용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생산기술연구원이나 대학에 있는 박사급 연구원들과 함께 국산화에 나섰다”고 밝혔다. 자신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창원기능대, 연세대 대학원(전기공학 석사)을 거쳐 건국대 박사 과정(전기공학)을 수료했다.
특히 대학의 박사급 연구원들을 파트타임으로 고용해 도움을 받고 있다. 이를 통해 2009년에는 차세대 ‘인버터 스포트 용접시스템’도 개발했다. 알루미늄 합금 자동차의 차체 용접에 쓸 수 있는 장비다. 연비 개선은 자동차의 중량과 관계가 있고 차량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선 알루미늄 합금 용접 기술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장비를 국산화한 것이다. 은 사장은 “이 장비는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는 첨단 장비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이 장비 역시 생산기술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개발했다.
셋째, 해외 시장 겨냥이다. 초기에는 국산화에 치중했지만 요즘에는 수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은 사장은 “용접장비 분야의 세계적 기업인 미국 빅터그룹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독일 중국 등 1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금액은 많지 않다. 그는 “앞으로 수출을 더욱 늘리기 위해 김해공장(부지 4000㎡, 건평 1300㎡ 규모)에서는 용접자동화설비 대용량용접기 생산을 확대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용접전원장치 기술을 활용해 15분 안에 충전이 완료되는 ‘전기자동차 급속충전기’도 개발했다. 정부과제를 수주해 건국대와 공동으로 개발한 것이다. 이어서 에너지저장장치와 관련된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제품 개발에도 나섰다.
은 사장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용접은 위험하고 지저분한 곳에서 작업하는 분야라고 잘못 알고 있다”며 “연간 수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용접사들이 있을 정도로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뿌리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는 만큼 앞으로 용접 분야에서 인생의 불꽃을 피우는 젊은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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