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유해물질 '무단 배출' 기업들의 항변

입력 2013-02-21 17:13   수정 2013-02-21 21:25

박해영 산업부 기자 bono@hankyung.com


21일 충남의 한 석유화학 공장. 기자를 만난 환경관리팀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정수 처리가 끝난 배출수에서는 기준치를 초과한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았어요. 정수 과정에서 사전에 신고하지 않은 물질이 검출됐다는데, 그것도 사실은 이미 신고한 것들입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전날 환경부가 발표한 유해물질 무단 배출 업체 163개사 명단에 이 공장이 포함됐다는 얘기를 꺼내자 그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 회사는 지역 환경청에 사전 신고하지 않은 유해물질이 정수 처리 과정에서 검출돼 환경부의 고발과 행정처분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회사 측 주장은 달랐다. 환경부 조사 이전에 유해물질을 신고했는데, 환경부의 행정 착오로 신고 날짜가 조사 시점 이후로 잘못 입력됐다고 했다. 회사 관계자는 “신고하지 않은 물질이 검출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정수 처리를 마친 배출수에서는 해당 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나왔는데도 독극물을 무단 방류한 기업으로 낙인찍혔다”고 허탈해했다.

환경부 조사 결과에 반발한 곳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들도 무단 배출 업체에 무더기로 포함됐다. 하지만 적발된 상당수 기업들은 사업장 내 폐수처리 과정에서 해당 물질을 걸러냈다고 한다. 외부로 내보내는 처리수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날 환경부 발표 자료는 ‘유해물질을 무단 배출했다’고 표현했다. 유해물질이 섞인 폐수를 회사 밖으로 방류했다는 뜻으로 이해하기 십상이다. 전남 여수의 한 화학공장 직원은 “배출수는 문제가 없는데 중간 처리과정에서 특정 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고 규제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여수 앞바다에 유해물질을 쏟아부은 회사로 각인돼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어떤 회사도 환경부 발표에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관계가 틀어졌다가는 ‘대드는 기업’으로 찍힐 수 있어서다.

환경부는 “폐수배출 관리권이 2002년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된 뒤 관리가 느슨해져 직접 기획 조사를 벌였다”고 설명했다. 유난히 추웠던 이번 겨울에 6개 지역 환경청 직원들이 1개월 이상 현장 조사를 벌였다. 노력의 결과물을 ‘무단 배출’이라는 용어로 포장하는 바람에 해당 기업들은 수긍하지 않고, 부풀리기를 했다는 오해를 일으켜 아쉬움이 크다.

박해영 산업부 기자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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