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국익 위해 '엔화 약세' 모른 척하는 미국

입력 2013-02-22 13:43  

엔저와 플라자 합의

일본 아베 정부의 엔저 정책 파장이 심상치 않다. 당장 주요 7개국(G7)과 유로존에서 파열음이 들려온다. 엊그제 국제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요동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공동성명이 나오자 엔화 환율은 달러당 94엔대까지 급등했다가 다시 92엔 선으로 급락하는 등 널뛰기를 했다. - 2월13일 한국경제신문

☞ # 1985년 9월 뉴욕 맨해튼에 있는 플라자호텔. 1907년에 지어진 뉴욕의 역사적 건축물인 이 럭셔리 호텔에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G5(선진 5개국) 재무장관이 모여들었다. 회의 주제는 환율. 미국 측은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가치가 과도하게 저평가돼 이들 국가와의 무역에서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다며 엔화와 마르크화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소리쳤다. 당시만 해도 일본은 막대한 무역흑자 등에 힘입어 미국의 기업과 부동산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던 때였다. 미국의 압력에 반발하던 일본과 독일은 결국 통화 가치 절상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와 마르크화 가치는 가파르게 뛰었다. 특히 엔화 가치는 1985년 달러당 260엔에서 1987년 말 123엔으로 2년여 만에 무려 두 배 이상 올랐다. 엔화 가치의 상승(엔고)은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잃어버린 10년’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플라자 합의 이후 28년. 지난 12일 런던에서 모인 G7(선진 7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애매모호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환율은 시장 원리로 결정돼야 한다’면서도 동시에 ‘각국의 경제목표 달성을 위한 통화정책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는 모순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다. 이 공동성명이 엔저를 용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엔화 환율은 달러당 94.46엔까지 급등했다가 오해였다는 G7 관계자의 언급이 나오자 다시 92엔 선으로 급락하는 등 요동을 쳤다. 이에 앞서 라엘 브레이너드 미국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은 성장 촉진과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엔저 정책을 추진하는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일본의 아베 정부가 엔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수출을 늘려 경제를 부양하겠다는 얘기다. 일본 중앙은행(일본은행)이 엄청나게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고 물가를 연 2% 이상 올리겠다고 공표한 것도 장기 저성장에서 벗어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도 늘리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왜 플라자 합의 때와는 정반대로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기부양책)의 엔 약세 정책을 눈감아주는 것일까? 그건 엔저가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국익 앞에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격언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미국 오바마 2기 행정부의 정책은 ‘아시아 중시’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기관차로 떠오른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잃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같은 ‘아시아 중시’ 전략은 미국에 맞서 세계를 이끄는 중핵 세력으로 떠오른 중국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견제하느냐가 관건이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일본의 건재를 필요로 하는 이유다. 일본이 침몰하는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부활해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 게 절실한 것이다.

일각에서 미국이 엔저를 용인하는 대신 일본 정부에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토록 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아우르는 자유무역 협상인 TPP를 추진하고 있지만 일본은 그동안 참여를 꺼렸다. 미국은 또 엔저를 눈감아주는 대신 일본에 미국산 셰일가스(진흙 퇴적암층에서 뽑아낸 천연가스)를 수출하려 할 것이란 얘기도 돌고 있다.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국인 일본에 셰일가스를 수출하면 미국은 경기를 부양하고 에너지 패권도 확보할 수 있다.

오바마 2기 행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잃어버린 세계의 지도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호주 등 10여개국과 TPP를 맺고 유럽연합(EU)과도 FTA 체결 추진을 선언한 것은 수출 확대를 통해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다.

미국의 엔저 용인으로 최근 엔화 가치는 가파르게 떨어졌다. “조만간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자 자동차 선박 석유화학 철강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일본산 제품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들에는 엄청난 악재다. 수출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해외 시장을 일본 업체에 잠식당할 가능성이 커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이 시중에 무차별적으로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에 신흥국들로선 자본 통제 등을 통해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세계 전략과 일본 정부의 엔저 정책에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가 치명상을 입지 않도록 철저한 대응책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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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억제서 '거래 살리기'로 바뀐 부동산 정책

부동산 취득세 감면

부동산 취득세 감면 기한이 6개월 연장될 경우 올해 상반기 입주를 앞둔 전국 9만4000여가구가 혜택을 누릴 전망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 6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작년 말까지였던 취득세 감면 기한을 6개월 연장하는 내용의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2월12일 연합뉴스

☞ 취득세는 건물이나 땅(부동산), 자동차, 선박, 골프·콘도 회원권, 건설기계 등을 살 때(취득할 때) 내는 세금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부과한다. 세율은 부동산의 경우 취득가액의 4%다. 1억원짜리 부동산을 산다면 400만원을 취득세로 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취득세 외에 부동산을 사고 재산권 취득에 관한 사항을 등기 또는 등록하는 경우에 내야 하는 등록세도 있었는데 2011년 1월부터 등록세는 없어지고 취득세로 통합됐다. 대신 취득세율은 4%로 두 배 올랐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가 하도 좋지 않아 거래가 뚝 끊기다시피 한 바람에 정부는 2010년부터 최근까지 총 네 차례 취득세를 깎아주는 정책을 실시했다. 지난해에는 9월24일부터 12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세율을 1%로 낮췄다. 취득세 인하 효과로 지난해 하반기 일시적으로 부동산 거래가 살아나는 듯했으나 1월 들어 취득세율이 다시 2%로 올라가면서 부동산 거래가 또 얼어붙었다. 그래서 국회는 다시 취득세를 올 1월1일 거래분부터 소급해서 6월 말까지 6개월간 1%로 낮춰주기로 한 것이다. 단 9억원 초과 12억원 이상인 주택은 2%, 12억원 초과 주택은 3%의 취득세를 내야 한다.

부동산과 관련된 세금은 취득세 외에 양도소득세와 재산세가 있다. 양도소득세는 부동산을 팔아 얻은 이익(양도차익)에 대해 물리는 세금이고 재산세는 부동산 소유자에게 매년 부과하는 세금이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관련 세금은 과거 여러 차례 부동산 투기의 홍역을 앓은 까닭에 아직까지 투기 억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고령인구가 급증하는 등 인구구조가 바뀌고 경제가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부동산 시장도 구조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이다. 따라서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일본이나 스페인 등에서는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 상태로 들어가 나라 경제에 큰 짐이 됐다. 한국이 이런 전철을 뒤밟지 않으려면 부동산 정책의 패러다임을 투기 억제에서 거래 활성화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집값 급락으로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 고생하는 하우스 푸어 문제를 풀 수 있고 소비와 경기도 진작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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