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 11개국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모든 금융거래에 세금을 거두는 이른바 ‘토빈세’를 도입하기로 공식 발표했다. EU는 금융권에서 세금을 거둬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영국을 비롯한 EU 16개 회원국과 미국 정부, 월스트리트의 대형 금융회사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 EU 11개국, 토빈세 부과 선언
EU는 지난달 22일 경제 재무이사회(ECOFIN) 회의를 열고 토빈세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그리스 에스토니아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등 총 11개국이 합의에 참가했다. 영국 룩셈부르크 체코 몰타 등 4개국은 반대하고 있다. 아일랜드 스웨덴 핀란드 등 12개국은 아직 도입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토빈세는 국제 핫머니로 불리는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단기성 외환 거래 때문에 환율이 요동칠 것에 대비, 국경을 넘는 자본 이동에 세금을 매기자는 취지로 등장했다. 이번 합의안에 따르면 주식과 채권 등 거래에 0.1%의 세율을, 금융파생상품에는 0.01%의 세율이 적용된다.
EU집행위원회는 이번 조치로 연간 최대 350억유로(약 51조원)의 세금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이번 거래세에 참여하는 국가 중 가장 경제 규모가 작은 에스토니아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164억유로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알기르다스 셰메타 EU세제담당 집행위원은 “금융거래세가 시행되면 단일 시장의 기반이 강화되고 투기거래 남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美재무부"투자자 피해 우려"
미국 등이 반발하고 나선 이유는 과세 대상 기준 때문이다. 토빈세 도입안에는 ‘과세 국가에 본사를 둔 금융회사가 관련된 모든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한국 증권회사가 내년 1월부터 프랑스 투자은행이 만든 파생금융상품을 팔 경우 프랑스 정부에 이에 해당하는 거래세를 내야 한다. 뉴욕과 런던, 홍콩을 포함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나 EU가 아닌 지역에서 발생하는 금융거래도 과세 대상에 포함돼 사실상 세계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WSJ은 이 발표가 있기 전 단독 입수한 자료를 통해 미국 재무부가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자금 흐름에도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EU의 금융거래세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존 설리번 미국 재무부 대변인도 “(토빈세 도입 반대) 서한을 EU 측에 전달했다”고 확인했다.
WSJ은 EU의 토빈세 도입안이 공식적으로는 탈세 방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유로존 국가들의 세수 확보 꼼수가 숨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재정위기를 겪은 일부 유로존 국가의 은행 부실을 메우기 위해 퍼부었던 수십억유로를 토빈세로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증권사 TD아메리카트레이드의 폴 지간티 수석전략가는 “35달러에 1000주를 매입하면 세금 10달러를 내던 고객이 이제 70달러를 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방비 상태로 이 소식을 접한 월가는 발칵 뒤집혔다. 미국 상공회의소와 월가 대형 금융회사를 대변하는 금융서비스포럼 등은 EU 집행위에 금융거래세의 일방적 부과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들은 알기르다스 세메타 EU 세제담당 집행위원에게 “세금 관할권에 대한 이런 일방적 결정은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현재 국제조세법과 조약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금융거래세 도입은 이중·다중 과세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고도 강조했다.
#"금융시장 왜곡시킨다"지적도
EU 측은 그러나 토빈세가 법적·기술적으로 안정적인 제도이고 무책임한 금융거래를 막을 수 있는 묘안이라는 입장이다.
영국 등 토빈세 도입을 거부한 국가나 유럽에 본사를 둔 글로벌 대형 은행들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국 법률회사 마이어 브라운의 알렉산드리아 카 변호사는 “토빈세 과세 대상이 EU 11개국 이외 지역까지 확대된다면 도입에 참여하지 않은 나라의 권리를 짓밟는 악법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토빈세 도입으로 금융거래가 위축돼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웨덴은 1984년 주식 및 채권 거래세 0.5%를 도입하고 1989년 고정수익채권에 거래세 0.002%, 만기 5년 이상 채권에 거래세 0.003%를 부과했지만 이것이 금융시장에 커다란 부작용을 일으켜 결국 1991년 모든 과세를 철회했다.
토빈세가 뭐지?
obin tax. 투기성 해외자금(핫머니)의 유출입을 억제하기 위해 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금융시장 분석 전문가로 198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토빈이 제안해 토빈세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정환율제도를 표방했던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되면서 환율 안정을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 이동에 대해 과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강영연 한국경제신문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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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실리는 '한국형 토빈세' … "널뛰는 환율 더이상 못참아"
세계 환율전쟁 적극 대응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0일 이례적으로 외환시장에 고강도 개입성 발언을 내놓았다. 정부가 세계 환율전쟁에 적극 대응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외환당국이 ‘한국형 토빈세’ 등 보다 강력한 조치를 시행할 가능성도 커졌다.
박 당선인의 ‘선제적 대응’ 발언으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채권거래세, 외환거래세 도입 등 ‘한국형 토빈세’의 실행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환율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1급)은 지난달 30일 금융연구원 주최 세미나에서 “자본 유출입 변동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한국형 토빈세 추진 방침을 공식화한 바 있다.
재정부 국제금융국도 최근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에게 외환거래세 부과를 위한 구체적 시행 방안을 보고하고 현 후보자도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내정자도 조세연구원장 재직 시 토빈세 도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한국은행도 자본 유출입 통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말 한국 대외 채권(5359억달러)과 대외 채무(4134억달러) 잔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단기 외채 비중이 줄어들긴 했지만 외국인 채권 투자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경우 금융시장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투기적 목적으로 환율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경우가 있다”며 “시장의 변동성을 이용해 투기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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