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쌍용그룹이 해체됐고, 김 회장은 쌍용건설 지분을 채권단에 넘기고 ‘오너’에서 ‘전문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1983년 쌍용건설과 인연을 맺은 후 크고 작은 해외 프로젝트 현장을 수주 단계부터 시공까지 직접 챙기기도 했다. 또 10년 이상 한·싱가포르 경제협력위원장을 맡아 화교 정·재계 인사들과 인연을 맺었다. 현장제일주의와 차곡차곡 쌓인 해외 인맥은 쌍용건설이 해외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데 일조했다. 김 회장은 2006년 한때 회장직을 사임한 후 2010년 재취임할 때까지 4년간 해외사업 수주에 나서는 등 백의종군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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