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민아 / 사진 오재철] 아이들에게 모험에 대한 신나는 꿈과 희망을 심어 주는 에버랜드. 지금의 에버랜드가 자연농원이었을 적, 그러니까 한 20년 전 쯤 우리 가족은 자연농원 연간회원권 획득(?) 가족이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온가족이 신나게 자연농원으로 달려가 각종 놀이기구와 퍼레이드를 즐기며 꿈꾸듯 즐거운 주말을 보내곤 했다.
뿐만 아니라 오빠도 놀이동산이라면 환장을 하는 어른. 특히 매년 여름만 되면 캐리비안 베이에 살다시피 하는 물놀이 매니아가 바로 테츠다. 그러니까 자연농원, 아니 에버랜드는 어른인 우리 나테(나디아와 테츠)에게도 신나는 꿈과 자유를 심어 주었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하다 즐거운 액티비티를 만나면 항상 “오! 에버랜드보다 재밌어!” 또는 “에이, 에버랜드 보단 별론데?”하며 즐거움의 기준을 에버랜드에 두는 버릇이 생겼다.
놀기 좋아하는 우리가 세계를 여행한다 하니 놀고 싶은 거 다 놀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며 매일 신나게 노는 줄로만 알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오빠는 나테한 세계여행에 올릴 생생한 사진을 얻기 위해 사진을 찍고 찍고 또 찍는다. 어떤 날은 두 눈으로 직접 세상을 보는 시간보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는 시간이 더 길 때도 있는 듯. 그리고 나는 낮에 이곳 저곳 돌아다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들어와 매일 밤 늦게까지 글을 쓰곤 한다. 이런 우리가 과테말라에서 에버랜드보다 놀기 좋은 곳, 일을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해서 놀 수 밖에 없는 곳을 찾았으니, 바로 마야어로 ‘성스러운 물’이란 의미의 세묵 참페이(Semuc Champey)다.
깊은 밀림 속 협곡에 위치한 세묵 참페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안티구아에서 랑킨이라는 시골마을까지 약 7시간을 달린 후 트럭 짐칸으로 바꿔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40여 분을 더 달려야 한다. 여행을 하면서 밤하늘의 별이 진짜 아름다운 순간은 바로 이런 때이다. 시간 내서 일부러 고개를 쳐들고 별을 바라보는 때가 아니라 오늘처럼 이동하면서 딱히 할 일이 없기에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털털거리는 트럭 뒤 짐칸과 밤하늘의 별들이 바로 완벽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완벽한 순간이 지나고… 안티구아에서 오후 2시 경 출발하여 세묵 참페이에서 가장 가까운 호스텔 ‘엘 포탈(El Potal)’에 도착한 것은 막 밤 10시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트럭에서 내리자 칠흙 같은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에 호스텔이 있다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우리는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호스텔 주인의 손을 더듬더듬 붙잡고 그의 작은 랜턴 불빛에 의지한 채 우리가 묵을 방으로 안내되었다. “이 일대가 모두 정전인가요?”, “아니요. 전기가 넉넉치 않아 이 곳은 매일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만 리셉션에서 전기를 사용할 수 있어요. 호스텔 내 모든 손님들은 이 시간에만 줄을 서서 전자기기를 충전하거나 인터넷 사용을 할 수 있답니다. 지금은 밤 10시가 넘어 모든 전기를 차단한 상태에요”
아, 아, 아!
우리는 이 깊은 산 속의 어둠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발 닦고 잠이나 잘 수 밖에…
새벽녘 산새 지저귀는 소리에 살며시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켰다.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밀고 밖으로 나오니 옅은 물안개가 피어오른 푸르른 숲 속 한 가운데 지어진 통나무집 아래 내가 서 있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개봉하기 전 손으로 살포시 두 눈을 가리 듯 이토록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 어젯밤 칠흙 같은 어둠이 우리의 눈을 가렸었나 보다. 지난 밤 아무것도 볼 수 없었기에 세묵 참페이의 아침 풍경은 더욱 놀라웠고 아름다웠다.
상쾌한 공기를 맡으며 간단히 아침을 먹고 리셉션에 모여 오늘의 투어를 시작했다. 세묵 참페이에서 가장 가까운 호스텔답게 걸어서 갈 수 있다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슬리퍼 하나 달랑 신고 출발했는데, 축축하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자꾸 미끄러져 오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휴우,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 숨이 턱까지 차올라 포기할까 싶을 때 쯤 먼저 오른 그룹의 탄성 소리가 들렸다. 힘을 내 정상에 오르니 사진 속에서 보았던 그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났다. 비 오듯 온몸에 흐르는 땀과 숲속의 습한 기운에 꿉꿉해진 우리에게 저 멀리 보이는 자연 풀장은 말 그대로 파라다이스처럼 보였다. “렛츠 고, 이제부터 즐기러 가는 거야!” 가이드를 따라 비탈진 산길을 달리듯 내려와 자연이 만든 천연 수영장, 세묵 참페이로 ‘풍덩’ 몸을 날렸다. 한 없이 맑고 청량한 물 속으로 빠져드는 그 느낌을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물 안의 모든 것들이 깨끗해 보였던 세묵 참페이… 여행을 떠난 지 한참이 지난 이제서야 스트레스의 찌꺼기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이 사라지는 듯 했다. 크고 작은 옥빛 자연 풀장을 옮겨다니며 미끄럼틀도 타고 다이빙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먹고 동굴 투어로 향했다. 동굴 입구에서 각자 하나씩 초를 나눠 주었는데, 이 작은 초에 의지해 길고 긴 동굴 탐험을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사진으로 남길 수가 없다는 점. 박쥐가 날아다닐 것만 같은 어두운 동굴 속, 때로는 좁디 좁은 동굴을 잔뜩 움츠린 채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거나 떄로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한 손으로 촛불을 수면 위로 치켜 든 채 아등바등 수영을 해야한다. 또 때로는 보이지 않는 깊은 수면을 향해 풍덩 다이빙을 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진짜 모험이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두려움을 이기고 이 모든 걸 해내고 무사히 밝은 빛이 비추이는 동굴 입구로 돌아왔을 때, 조금은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지막 코스는 해가 늬엿늬엿 넘어가는 시간, 세묵 참페이의 강줄기를 따라 유유자적 튜브를 타고 떠내려 오며 주변 경관을 구경하는 ‘튜빙’. 같이 ‘튜빙’을 즐기는 이들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면서 정글에서나 봄직한 나무줄기들 사이로 지나가다보면 동네사람들의 빨래하는 풍경과도 만나고, 물놀이 나온 아이들과도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게된다. 그 옛날 에버랜드에서 지구마을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난 과테말라의 산 기슭에서 어린 시절의 꿈을 만났다.
이른 새벽, 첩첩산중 고요한 숲 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난 오늘 아침 그 순간부터 붉은 노을이 지는 이 순간까지 신이 빚어놓은 그들의 놀이동산에 초대되었던 건 아닐까?
[나테한 세계여행]은 ‘나디아(정민아)’와 ‘테츠(오재철)’가 함께 떠나는 느리고 여유로운 세계여행 이야기입니다. (협찬 / 오라클피부과, 대광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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