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세계사는 그야말로 영국의 전성기였다. 15세기 말이 동서교역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던 이슬람제국과 이탈리아의 전성기였다면 이후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전성기를 거쳐 17세기부터는 영국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앞서 전성기를 경험했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영국의 전성기가 3세기에 걸쳐 지속될 만큼 오랫동안 유지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영국이 이처럼 장기간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광활한 식민지 영토 때문이 아니라 산업혁명을 촉발시켰기 때문이었다.
영국 전성기와 산업혁명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된 이유로 영국의 막강한 자금력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영국은 17세기부터 막강한 해군력을 앞세워 많은 식민지를 차지하고 이들 식민지를 기반으로 모직물, 상품무역, 노예시장 등을 독점해 막대한 부를 축척할 수 있었다. 이런 이익이 영국의 산업혁명에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식민지로부터 얻게 된 막대한 부가 산업혁명의 중요 요인이었다면 이전에 세계 경제의 패권을 잡고 있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네덜란드에서 산업혁명이 유발되지 않았던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16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영국의 에너지 위기로 인해 산업혁명이 촉발됐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당시 영국은 급속한 인구 증가로 인해 땔감과 목재 수요가 부족해져 무분별한 벌목이 이뤄졌고, 그로 인해 가정이나 공장에서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국은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17세기 후반 들어 영국이 생산한 석탄의 생산량이 전 세계 석탄 생산량의 85%를 차지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당시 영국이 얼마나 석탄에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은 석탄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하수를 밖으로 빼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었고, 채광한 석탄을 운반하는 문제 또한 중요했다. 이 과정에서 1698년 토머스 세이버리가 펌프를 발명하게 됐고, 1705년 토머스 뉴커먼이 발명한 증기기관이 석탄 운송에 도입되는 시도들이 있었다. 물론 에너지 위기로 인해 석탄 채광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이런 과정에서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기계가 도입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산업혁명의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는 없다. 산업혁명은 광산업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라 면직물 공업에서 촉발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이 면직물 공업에서 유발된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 주된 원인 중 하나는 보호무역에 기인한다. 원래 산업혁명 이전의 영국은 모직물 산업이 번창했다. 하지만 1700년 전후로 인도에서 ‘캘리코’라는 값싼 면직물이 영국에 들어오면서 일반 서민들이 비싼 모직물보다 면직물을 크게 선호해 영국의 직물업자들이 속속 망하게 됐다.
산업혁명 촉발한 면직물
캘리코란 인도의 항구 캘리컷을 통해 수입된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인도의 면직물은 고대로부터 주변 아시아 지역뿐 아니라 멀리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 동쪽까지 수출됐을 정도로 품질이 우수했다. 이처럼 모직물보다 세탁 등이 훨씬 용이하면서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캘리코가 영국에 수입되면서 영국의 모직 산업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캘리코 수입으로 인해 모직 산업에 종사하다 실직 위기에 몰린 직공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캘리코를 입은 여성들을 공격했을 정도라고 하니, 당시의 영국 사회의 분위기가 어떤 상황이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영국정부는 캘리코 수입을 금지하고 심지어 착용 자체도 금지하는 법규를 통과시키기까지 했다. 영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무역 조치를 강구한 것이다.
보호무역이란 자기 나라의 산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국가가 대외 무역을 간섭하고 수입에 여러 가지 제한을 두는 무역 형태를 말한다. 이러한 보호무역은 일반적으로 외국보다 뒤떨어진 자국의 산업을 일정 기간 동안 보호·육성하고자 하는 목적하에 실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산업을 유치산업으로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 유치산업 선정 시 로비나 정치적 압력이 작용할 수 있다는 문제, 유치산업으로 선정된 산업은 계속해서 보호 조치를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보호무역을 통해서 자국의 산업을 보호·육성할 수 있다는 측면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역시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나라의 주력 산업 분야들은 이러한 정부의 보호·육성 정책하에 성장한 바가 적지 않다.
보호무역의 아이러니
17세기 영국이 캘리코 수입을 억제하고자 일련의 조치들을 시도한 이유 역시 자국의 대표적인 산업 분야인 모직 산업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보호무역 조치들로 캘리코의 수입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시 영국의 선도적인 자본가이자 발명가인 아크라이트(Arkwright), 크롬프턴(Crompton) 등은 캘리코를 모방한 다양한 직기를 만들어내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결국 이들을 포함한 많은 자본가와 발명가는 필사적으로 다양한 방적기(실을 만드는 기계)와 직조기(천을 만드는 기계)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다. 이들의 시도를 시초로 해서 여러 사람들이 사람의 힘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증기기관과 기계의 사용을 지속적으로 시도했고, 결국 대량 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보호무역 조치 속에서 성장한 많은 기업들이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해결책과 대안을 내면서 발전했듯이 당시에도 몇 세기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인도의 고급 기술을 극복하기 위해 기계라는 혁신적인 대안을 생각해낸 것이다.
방적기와 직조기의 발달은 면직물 산업을 넘어 다른 산업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분야에 기계와 증기기관이 도입되면서 제철산업의 발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면직물 공업 분야와 광산업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기계를 도입하고 증기기관을 활용하면서 제련기술이 급속히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철 공업의 발달은 산업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됐고, 결국 철도, 선박 등의 분야로까지 확산돼 산업혁명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영국에서 발생한 산업혁명이라는 혁신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미국과 독일로 전파됐으며, 19세기 말에는 러시아와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에서도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됐다. 많은 경제사학자들이 러시아, 이탈리아, 일본, 미국, 독일 지역에서의 산업혁명은 정부주도로 진행되었고, 영국과 프랑스의 산업혁명은 민간의 자본가들의 주도하에 진행됐다고 분류하고 있다. 보호무역 조치 때문에 영국에서는 민간 부문에서 산업혁명이 촉발됐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영국의 산업혁명이 민간에서 촉발될 수 있었던 환경 중 하나에 정부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고자 했던 노력도 포함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e.kr
경제 용어 풀이
▨ 보호무역
자기 나라의 산업을 보호ㆍ육성하기 위하여 국가가 관세 또는 수입할당제 등의 수단을 통해 대외 무역을 간섭하고 수입에 여러 가지 제한을 두는 무역형태를 말한다. 이러한 보호무역의 주된 목적은 국내 산업을 유치 보호할 목적 아래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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