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개인 금융정보 누출되고 효과도 미미"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가 약속한 공약은 여러 가지지만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복지정책이다. 새 정부가 내건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국고부담, 무상보육 등 관련 복지정책들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향후 5년간 135조원의 돈이 들어간다고 한다. 한 해 나라 예산의 40%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이 같은 돈을 조달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140개 국정과제를 발표했지만 여기서도 135조원에 대한 뚜렷한 재원 마련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새 정부는 가급적 증세는 최소화하고 각종 조세 감면을 줄이는 한편 지하경제를 양성화해서 이 같은 재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부터 여러 차례 지하경제 양성화를 강조했다. 이 부분에서 줄줄 새는 세금만 제대로 걷어도 복지재원 상당 부분을 커버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지하경제 양성화에는 걸림돌이 적지 않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서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도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최승필 한국외국어대 로스쿨 교수는 “복지재원 마련도 그렇지만 조세정의와 공평과세 차원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저출산 고령화로 국가의 역할은 더욱 확대되고 그러다 보면 재원 확보는 중요한데 노출된 세원에 집중되는 증세는 성실 납세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라며 “따라서 새로운 세원 발굴을 통해 나머지 부분을 채우겠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김유찬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용카드 사용 확대와 현금영수증 의무 발급, 세금계산서 발급 확대 등을 통한 양성화는 괄목할 만하지만 이제 한계에 다다른 데다 소비자의 협조에 의존해야 하는 만큼 추가적 양성화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료를 국세청이 100%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세청이 세무조사 등에 활용할 수 있는 FIU 자료는 극소수인데 이를 확대하면 엄청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09~2011년 3년 동안 FIU에서 통보받는 극히 일부 자료만으로도 세무조사를 통해 4318억원을 거둬들였는데 모든 FIU 자료를 토대로 세무조사를 하면 최소 4조원, 최대 10조원의 세수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한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금융비밀주의 철폐는 국제적 추세이며 금융정보 접근을 제한할수록 탈세만 부추긴다는 이유를 들어 반박한다.
반대
홍기용 인천대 경영대학 교수는 “지하경제 양성화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계층은 중소 규모 법인과 자영업자들인데 이들의 조세 부담이 크게 늘면 조세 저항을 부를 수 있고 결과적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경제의 주름을 깊게 할 수도 있다”는 견해다. 그는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FIU 정보의 국세청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다소 부정적이다. 탈세혐의가 있는 고액 금융거래는 이미 국세청에 보고되고 있는데 모든 금융거래 정보를 국세청이 들여다본다는 것은 개인정보 과다 누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지하경제가 이미 상당 부분 노출돼 있다며 실효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국내 신용카드 사용 증가와 과세표준 현실화로 지하경제의 상당 부분이 이미 양성화됐다”며 “지하경제가 많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일종의 포퓰리즘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일부에서는 지하경제 양성화보다는 해외 탈세 포착이 더욱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기법이 고도화하면서 해외 조세피난처를 통해 뭉칫돈이 세탁되고 고소득자의 자산이 은닉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세금을 더 걷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FIU의 모든 정보를 국세청이 열람하게 되면 은행계좌를 통한 현금거래 방식의 조세범죄는 현금거래 방식을 택하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지하경제를 더욱 확대시킬 수도 있다”며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생각하기
지하경제 양성화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개인의 금융 사생활 노출과 이를 통한 세수 확보라는 두 가지를 놓고 어디에서 적정한 타협점을 찾느냐에 있다. 시행 전에는 FIU 정보의 추가 제공이 어느 정도 세수로 이어질지 추산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개인 금융거래 정보의 전면 제공보다는 일정한 기준을 정해 현재보다 범위를 확대하고 그 효과가 좋다면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지하경제 양성화가 자칫 서민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고려할 대상은 아니다. 그것이 탈세이고 엄연한 위법행위라면 단지 서민이라고 해서 용인하고 봐주자는 식의 사고는 결코 시장경제 질서 확립이나 거래 투명화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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