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다른 남자와, 내겐 마음만 주세요"…초현실적인 달리의 사랑

입력 2013-03-01 17:03   수정 2013-03-01 22:31

<40> 살바도르 달리



“저 여자가 우리 예술 운동을 망쳐놨어. 모든 멤버들에게 사악한 기운을 주입했단 말이야.”

20세기 전반의 대표적 미술운동인 초현실주의의 정신적 지도자 앙드레 브르통은 한 여인을 지목하며 독설을 내뱉었다. 시인 폴 엘뤼아르의 부인 갈라(Gala)를 두고 한 얘기였다. 엘뤼아르는 초현실주의자의 모임 때마다 부인을 대동하고 나타났는데 이 러시아 출신의 매혹적이고 총명한 여인은 가는 곳마다 남성들을 자신의 발 아래 무릎 꿇리는 마력의 소유자였다.

브르통은 처음에는 시인 루이 아라공, 화가 막스 에른스트와 마찬가지로 이 여인에게 푹 빠졌지만 나중에는 갈라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며 경멸했다. 독일에서 불법 입국한 에른스트는 엘뤼아르의 호의로 그의 집에 머물렀는데 갈라와 사랑에 빠져 깊은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는 2년 만에 끝났지만 엘뤼아르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갈라의 부정적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뒤늦게 초현실주의 그룹에 합류한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와 새 살림을 차렸기 때문이다. 1929년 부부가 달리의 초청으로 스페인을 방문한 게 화근이었다. 10살 연상의 갈라에게 첫눈에 반한 달리는 어렵게 사랑을 고백했고 갈라는 “당신은 평생 나를 떠날 수 없어”라고 화답했다.

당시 달리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마치 미친 사람처럼 괴성을 지르며 웃는 버릇이 있었는데 갈라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해괴망측한’ 남자를 갈라는 평생의 동반자로 여긴 것이다. 그는 아마도 이 불안정한 남자 속에서 세상을 뒤흔들 천재성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달리는 권위적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과보호 아래 성장했는데 이는 달리를 성적 미숙아로 만들었고 여성을 사랑하는 데도 문제를 드러내게 된다. 그는 여성을 짝사랑하거나 멀찌감치 지켜보기만 할 뿐 사랑을 어떻게 나눌지 몰라 고민했다. 여동생인 안나 마리와에 대한 근친상간에 가까운 집착이 그가 가진 유일한 성적 체험이었다. 성에 관한 한 그는 유아기에 머물러 있던 것이다. 그의 유아성은 주변 사람의 주의를 끌기 위해 염소똥을 자신의 몸에 바르거나 귀에다 붉은색 제라늄을 꽂는 기행을 일삼은 데서도 잘 드러난다. 그가 현실이 아닌 무의식의 초현실 세계로 빠져들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갈라는 그런 달리의 남다른 성장 배경과 상식을 벗어난 행동 속에서 천재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갈라는 이 미완의 천재를 진정한 어른이자 남자로 완성시킨다. 그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남성으로서의 성적 정체성을 확립시켜준다. 달리도 그런 갈라를 통해 자신이 완전한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고 믿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과 갈라를 분리할 수 없는 일체라고 믿었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 ‘갈라 살바도르 달리’라고 서명한 것은 그런 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을 나눈 것은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달리는 남녀 간의 성적 결합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어린 시절 우연히 아버지가 갖고 있던 성병에 대한 책을 본 게 계기가 됐다. 어린 달리는 책을 통해 성병이 치명적인 죽음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달리는 잠자리를 기피한 채 갈라에게 외간 남자와 만날 것을 부추겼고 달리는 그런 갈라의 외도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다고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합이었다. 그렇게 달리는 갈라와 이상스러운 상태로 평생 연대관계를 유지했다.

대신 갈라는 평생 달리의 정서적 지주이자 작품 활동의 조력자로 남았다. 1937년 이후에는 달리가 편안하게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을 만들어주고 재료를 조달하는 한편 작품의 주문을 받고 판매하는 일까지 발 벗고 나선다. 그런 갈라의 도움에 힘입어 달리는 세계적인 인기 작가로 떠오른다.

달리는 갈라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 사랑은 현실이 아닌 초현실의 공간에서 이뤄졌다. 그는 갈라와 떨어져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갈라는 항상 그의 의식을 지배했다. 어려서부터 내면 세계에서 자유를 만끽하던 그에게 초현실 세계는 현실 속의 또 다른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잠시도 갈라와 떨어져 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초현실의 공간 속에서 갈라를 만나며 그로부터 끊임없이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그리스 신화 속의 주인공으로, 기독교의 성자로 겉모습만 바꿀 뿐 갈라는 달리의 작품 속에서 마치 그의 ‘아바타’처럼 끊임없이 나타나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그런 갈라의 손길은 이제 달리를 넘어 달리의 그림을 찾는 관객들에게도 베풀어지고 있다. 타자와 사랑에 빠진 갈라의 모습을 즐겼던 달리가 천상에서 괴성을 지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기쁨에 찬 비명이리라.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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