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퍼트롤]주주자본주의 몰락?…올해 주총 파행 잇따라

입력 2013-03-05 13:45  

"이봐요! 주주총회 와서 앉아 있을 시간에 일해서 생산성이라도 높여요."(소액주주)

"우리는 현 경영진과 함께 적대적 세력으로부터 회사를 지켜낼 것입니다. 지분만 있으면 회사를 소유할 수 있다고 오판하지 마십시요!"(노동조합) 

주주의 이익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주주자본주의' 생명력은 이제 다한 것인가?

최근 주주총회에서 주주와 현 경영진 간 분열로 첨예한 '표 대결'은 물론 '한 지붕 두 주총'이 열려 법정 공방으로까지 번지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주주들은 경영진의 무능과 부패를 꼬집으며 세력화를 통한 실력 행사를 본격화하고 있고, 경영진은 과도한 주주들의 개입에 회사가 무너지고 있다며 물리적 방어를 불사하고 있다.

지난 4일 한창 경영권 분쟁 중인 KJ프리텍의 정기주주총회에서 한 주주가 언성을 높였다. 이날 주총은 기존 주주들의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 여과없이 드러나면서 파행으로 치달았다.

경기도 화성시 청려수련원에서 열린 KJ프리텍 정기 주총에서는 폭력과 욕설이 난무했다. 주총 개최가 예정시간보다 3시간이나 늦어진데다 주총장 앞좌석의 대부분을 직원들이 미리 차지해 직원과 주주간에 자리 다툼이 일기도 했다. 주주들은 "주총 자리를 지킬 시간에 일을 해서 생산성을 올리라"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KJ프리텍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것은 지난해 말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참여를 선언하면서다. 이 전 부회장은 2011년 7월 유상증자 참여로 KJ프리텍의 최대주주가 됐지만 '단순 투자'에 불과하다며 경영권 인수 가능성을 경계했다. 그러나 KJ프리텍의 실적은 2010, 2011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고,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4월 KJ프리텍을 기업 부실 위험을 이유로 투자주의환기종목으로 지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전 부회장이 경영을 정상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전 부회장은 경영권 취득 후 무선충전기 등 신규 사업 등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겠다며 주주들을 설득했다. 특히 '애니콜 신화를 쓴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회장'이라는 경력이 부각되면서 주주들의 마음은 부풀었다.

이 전 부회장은 결국 대주주인 김상호씨도 우호지분으로 끌어들이면서 주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주총 참석 주식 1101만8000여주 중 810만3865주가 이 전 부회장을 지지했다. 비록 이 전 부회장 보유 의결권(약 300만주) 중 대부분이 의결권을 제한당해 경영권 장악에는 실패했지만 김상호씨 지분(약 120만주)을 제외하더라도 적지 않은 의결권을 모은 것으로 분석된다. 현 경영진을 지지하는 표는 287만9375주에 불과했다.

회사 측은 "이 전 부회장의 의결권은 5% 공시 위반으로 제한된다"며 서둘러 주총을 마무리했다. 이 전 부회장 측은 이에 크게 반발하며 임시 의장을 세우고 이 전 부회장 측이 제안한 안건을 모두 통과시켰다. 양 측은 각자 주총이 정당하다며 법정 공방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주요 셋톱박스 업체 중 하나로 꼽히는 홈캐스트의 임시주주총회도 주주들의 표심이 갈리면서 파행으로 끝났다.

홈캐스트는 장병권 제이비어뮤즈먼트 부회장으로부터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보선 홈캐스트 대표이사는 지난달 28일 임시주총을 개최하고 이사회 측이 제안한 안건을 모두 통과시켜 경영권을 방어했지만 장 부회장을 주축으로 한 일부 주주들이 자체적으로 주총을 열면서 향후 법적 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장 부회장 측은 이 대표가 홈캐스트 신주인수권 발행과 인수, 소각 등을 통해 본인의 이익을 불리고 주주를 기만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소액주주들에게 의결권 위임을 권유했다. 장 부회장 측은 임시주총에서 이사 보수총액 내지 한도액을 20억원에서 5억원으로 낮출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증권업계에서는 홈캐스트의 최근 실적 감소 등이 현 경영진에 대한 주주들의 실망감을 키운 탓도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홈캐스트의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5.82%, 92.03%씩 급감한 799억3900만원, 10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반면 동아제약은 성장 전략을 명확히 제시하면서 주주들의 마음을 얻는데 일부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동아제약은 지난 1월28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지주회사 전환안을 원안 그대로 가결시켰다. 동아제약이 제시한 전환안에 따르면 현금 창출 능력이 뛰어난 박카스가 비상장사에 포함돼 주식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일었다.

동아제약은 그러나 임시주총 이전 지난해 4분기 깜짝실적을 내놓으며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 증권업계에서도 지주사 전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자 주가가 상승, 주총에서도 주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신주인수권 발행 한도 변경과 관련된 의안은 부결돼 오는 15일에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다시 한번 주주들의 신뢰를 시험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일련의 주총 파행 장면은 주주자본주의 몰락을 떠올리게 한다"며 "경영진의 무능과 꼼수, 과도한 주주들의 개입이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정인지·오정민 기자 inj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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