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입력 2013-03-05 16:56   수정 2013-03-06 02:00

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국민을 볼모로 입법권을 무시하고 야당을 협박한 것이다.”(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에게 정부 구성의 재량권을 줘야 한다.”(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여야 지도부는 정부조직법 개정을 놓고 한 달이 넘도록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이렇게 ‘국민’을 내세웠다. 자신들 주장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고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국민을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박 대통령도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의 피해’를 거론하며 야당을 압박했다. 정치권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배수진을 치면서 애먼 국민들이 볼모로 잡히게 됐다.

여야는 서로에게 연일 삿대질을 하며 정치적 민낯을 드러내는 데도 스스럼없다. 공격적인 발언의 수위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은 지난 1월 말이었다. 그동안 35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정치권은 정쟁 속에 시간만 허투루 보내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만들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실종됐다. 정치권이 선거 전에 약속했던 민생 챙기기와 ‘새 정치’도 사라졌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은 막말 논란 등으로 문제를 일으킨 의원을 감싸는 구태와 악습을 보여줬다. 지난 4일 국회 윤리특위는 지난해 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해 ‘그년’이라고 했던 이종걸 민주당 의원과 정수장학회 통화기록 휴대폰 화면을 촬영·공개했던 배재정 민주당 의원에 대한 징계안 처리를 보류했다.

민주당에서 지난해 5월 제정된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안건조정위원회 회부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징계안은 90일까지의 조정기간을 갖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되는 지금까지의 ‘학습효과’를 노린 것이다. 선진 정치를 하겠다면서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에는 또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이나 국가 비상사태, 교섭단체 대표 간 합의 등으로 제한했다. 다수당에 의한 법안의 강행처리를 막겠다는 취지지만, 여야 간 타협 정치가 실종되면 주요 법안은 마냥 표류할 수밖에 없다.

19대 국회는 ‘국회 선진화’를 전면에 내걸고 출범한 국회다. 그러나 법과 제도만 고쳤을 뿐 제대로 된 협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잇속을 챙기기 전에 진심으로 국민의 삶을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 한 번쯤 되돌아봤으면 한다.

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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