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20권가량의 책을 읽는 대기업 사장 K씨는 해외출장을 갈 때면 전자책(e북)부터 챙긴다. 평소 국내에서는 종이책을 많이 읽지만, 해외출장 땐 여러 권 가져가기 곤란해서다. 하지만 그게 간단치 않다. 전자책 단말기에 담아갈 국내 도서가 마땅찮기 때문이다. 요즘은 신간도 제법 전자책으로 나오지만, 자신의 관심 분야에 딱 맞는 책은 많지 않다. 결국 아마존 같은 데서 외서를 구입해 읽을 수밖에 없다.
몇 년째 전자책을 읽고 있는 직장인 L씨도 전자책만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단말기가 인터넷 서점마다 제각각이어서 불편한 데다 전자책 가격도 책마다, 출판사마다 들쭉날쭉해서 종잡을 수 없어서다.
국내 전자책 시장이 아직 지지부진한 이유는 자명하다. 콘텐츠 공급난 탓이다. 미국의 경우 전자책이 종이책 시장의 25%에 이른다. 2015년쯤엔 전자책 매출이 전체 책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 있다.
전자책 콘텐츠 공급난 심각
하지만 국내 전자책 시장은 전체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업계 1위인 교보문고의 지난해 전자책 매출이 전체 판매액의 2%에도 못 미쳤다. 전자책이 국내에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출판사와 서점, 도서관 등 이해당사자들은 ‘룰 미팅’ 중이다.
물론 종이책과 달리 전자책을 둘러싼 환경은 복잡하다. 기존 종이책의 전자책 변환, 비용 최소화, 다양한 기기와 플랫폼에 적용하기 위한 호환성 확보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가령 국립중앙도서관에 전자책을 공급하는 문제도 간단치 않다. 도서관이 한 권의 전자책을 여러 명에게 무기한, 무제한으로 대출해준다면 출판사로선 손해다. 따라서 전자책 대여횟수와 기간을 제한하도록 출판계와 국립중앙도서관이 의견을 모으고 있지만, 국립도서관이 소장 도서를 렌털 형식으로 확보하려면 예산 규정을 고쳐야 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기 어렵다.
룰 미팅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기술은 광속도로 발전했고, 독자들의 전자책 적응도도 높아졌다. 중·대형 출판사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민음사는 최근 40쪽 분량으로 펴내는 전자책 시리즈 ‘민음 디지털 클래식’을 내놓기 시작했고, 열린책들은 150권을 149.99달러에 볼 수 있는 전자책 세계문학전집을 내놓았다.
빅뱅 임박 … 출판계, 속도 내야
또 다른 대형 출판사의 경우 올 들어 전자책 매출이 월 1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전자책 매출이 7%가량인 이 출판사는 이런 추세라면 2~3년 내에 전자책 매출이 전체의 30%를 넘을 것이라며 전자책 시장의 ‘빅뱅’이 머지않았다고 전망한다. 교보문고가 지난달 회원제 e북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이런 시장 전망과 무관치 않다. 최근 며칠 사이 전자책 관련주의 가격도 크게 올랐다.
문제는 콘텐츠다. 2015년까지 30만종으로 늘리겠다는 교보문고의 전자책은 현재 13만종이다. 아마존의 10분의 1 수준이다. 다른 서점이나 유통업체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전자책의 종 수가 태부족인 데다 신간, 베스트·스테디셀러, 인문·학술도서 등은 적고 장르문학 등에 편중돼 있다. 6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전자책 독서 실태조사’에서도 콘텐츠 확충(31.1%)을 전자책 활성화 방안으로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출판계가 전자책 콘텐츠 공급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4만2000권 이상의 고전을 전자책으로 빌려주는 미국의 무료 전자도서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도 참고할 만하다.
서화동 문화부 차장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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