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기술력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샤프를 갉아먹는 독약이 됐다. 결정적인 패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LCD 패널 분야의 대규모 투자. 한국과 대만 전자업체의 공세에 시달리던 샤프는 2007년 오사카부 사카이시에 세계 최대 규모의 TV용 LCD 패널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공장 건설과 인프라 구축에 1조엔(약 12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세계 최초로 LCD를 개발한 자존심을 대형 투자로 만회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결과는 참패였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에 엔고(高)까지 겹치며 삼성전자 등 경쟁 업체와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디스플레이 시장의 중심도 스마트폰 등 중소형 패널로 이동했다.
태양전지에 대한 투자도 오판이었다. 2007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태양전지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기업은 샤프였다. 그러나 작년엔 8위로 떨어졌다. 주원인은 중국 기업의 약진. 정부의 대규모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의 등장으로 한순간에 가격경쟁력을 잃어버렸다. 태양광 발전이 차세대 성장산업이라는 명제에만 매달려 잘못된 선택과 집중을 한 결과였다.
궁지에 몰린 샤프는 작년 3월 대만의 전자부품업체인 훙하이그룹과 손을 잡았다. 샤프가 지분 9.9%를 넘기는 대신 훙하이는 670억엔의 자금을 수혈하기로 합의했다. 샤프가 갖고 있는 기술력에 훙하이의 생산능력을 합칠 경우 TV용 패널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을 제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작년 여름부터 계약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당초 양사가 합의한 지분 매입가격은 주당 550엔. 그러나 자본 제휴 합의가 이뤄진 뒤 샤프 주가는 100엔대로 폭락했다. 훙하이는 지속적으로 매입가격 재조정을 요구했다. 지분 매입대금 납입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훙하이의 대금 납입기한은 오는 26일. 자본 제휴 계약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결국 라이벌 기업인 삼성전자에까지 SOS를 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일본 언론은 샤프의 이번 제휴를 ‘기회이자 도박’이라고 표현했다. 세계 LCD 패널 시장을 재편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샤프의 최대 고객인 애플과의 관계가 악화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일 전자 대기업이 자본 제휴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샤프가 자본 제휴를 계기로 삼성전자에 대한 LCD 패널 공급을 늘릴 경우 애플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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