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화풀이를 넘어서 냉정하게 득실 따져봐야"
일본 시네마현의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반발해 국내 자영업자들이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다며 지난달부터 불매운동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는 80여개 직능단체와 60여개 소상공인 자영업단체 시민단체가 참여, 이달부터 마일드세븐 아사히맥주 니콘 유니클로 도요타 렉서스 소니 혼다 등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 제품들의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일본의 계속된 독도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제2의 물산장려운동’이라며 3.1절 탑골공원에서 결의문도 낭독했다. 일본 상품을 사지도, 팔지도 말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운동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외교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이며 양국 모두에 득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둘러싼 찬반 양론을 알아본다.
찬성
찬성 측은 최근 아베 총리 등장 후 걷잡을 수 없이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움직임에 제재를 가하고 경고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도 불매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시네마현 차원에서 해오던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올해에는 일본 정부가 직접 관리를 파견했다는 것은 좌시할 수 없는 우리 영토에 대한 도발이라는 게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오호석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공동상임대표는 “지금까지는 일본 극우자들이 수시로 침략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독도를 자기 것이라고 했지만, 이번 다케시마의 날 행사는 국회의원 18명과 일본 정부 차관이 참석하는 정부 주관의 행사 성격을 보였다”며 “태극기를 길거리에 깔고 짓밟는 모습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울분을 삼킬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제 야욕의 근성을 버리지 못한 일본에 힘 없는 자영업자, 우리가 나서서라도 불매운동으로 맞서 따끔한 맛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라고 불매운동 이유를 밝혔다. 일본과의 교류를 생각하면 우리에게 손해일 수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 “경제논리만 따져서 우리가 침묵만 지키고 끌려갈 수는 없다. 불매운동은 우리 자존심을 찾는 운동, 나라사랑 운동으로 정화시키는 결심이다”라는 견해를 보였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모노리서치가 전국 성인남녀 1124명을 대상으로 찬반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7.0%가 불매운동에 찬성한다고 응답해 반대(37.8%)보다 많았다며 국민여론도 자신들 편이라는 입장이다.
반대
반대론자들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감정적 대응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불매운동이 화풀이 차원에서 잠깐 속이 후련할지는 몰라도 과연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 냉정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불매운동은 당장 일본 측의 연쇄반응을 불러올 것이고 상호간 감정이 격화되다 보면 급기야 양국 간 교역과 투자에도 악영향을 주는 감정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대론자들은 실제 중국과 일본 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이 발생했을 때의 사례를 든다. 당시 중국에서도 일제 불매운동이 벌어졌는데 중국 측 피해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 일본 수출이 줄고 일본 자본의 투자선 역시 제3국으로 발길을 돌리는 등 중국이 부메랑을 맞았다는 지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제사회에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세계 7대 교역국인 우리나라가 정치적 문제를 이유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벌일 경우 국수주의로 받아들여져 자칫 타국과의 통상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주최측은 ‘제2의 물산장려운동’이라고 하지만 물산장려운동은 경제력이 보잘 것 없던 일제 강점기에 민족자본을 형성해 일본으로부터 경제자립을 이루자는 운동이었는데 지금의 상황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불매운동을 벌인다고 독도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직접 일본을 자극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는 견해도 있다.
생각하기
G20을 창설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우리나라는 이제 국제사회에서 전과는 다른 매우 중요한 지위에 올랐다. 그렇다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타국과의 분쟁이나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도 종전 개도국이었을 때와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타국과의 문제는 외교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는 보편적 원칙이며 이제 우리나라도 이런 룰을 지키는 것이 요구되는 게 현실이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야 시장경제 질서도 유지되고 상인의 이익이나 소비자 효용도 극대화된다. 그런데 상인들이 시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장사는 그 자체의 철저한 상업적 논리로 경쟁하는 것이지 정치적 논리나 도덕적 가치판단이 개입해선는 안 된다.
애국심에 호소하고 싶겠지만 진정한 극일은 다른 데서 찾는 게 현명하다. 한창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을 이기는 진정한 길은 불매운동 같은 맞대응이 아니다. 그보다는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제품을 넘어서는 것이 진짜 극일하는 길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 기업이 많다. 근시안적인, 감정적 대응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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