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누적 판매량 800만대를 돌파했다. 1986년 엑셀을 첫 수출한 지 27년 만이다.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에서 세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거둔 성적이다. 현대차는 지난달 말까지 미국 시장 누적 판매량(국내 생산 수출+현지 생산)이 803만9227대를 기록했다고 8일 발표했다.
○세 차례 위기 겪으며 성장
800만대(미국 누적 판매량)는 현대차의 전체 해외시장 누적 판매량의 20%에 달하는 규모다. 쏘나타를 한 줄로 세웠을 때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사이(약 4000㎞)를 다섯 번 왕복할 수 있는 판매량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2007년 누적 판매량 500만대를 돌파한 지 6년 만에 800만대를 넘어섰다”며 “미국 판매량 중 600여만대는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한 물량”이라고 설명했다.
차종별로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차는 쏘나타였다. 1989년 처음 수출해 지난달까지 총 194만583대를 판매했다. 2위는 190만8344대가 팔린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다.
800만대를 넘어서기까지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세 차례의 위기를 겪으면서 올린 성적이다. 출발은 좋았다. 현대차는 1986년 엑셀로 미국 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엑셀은 첫해 16만8882대가 팔린 데 이어 1987년 26만3610대의 판매량을 기록, 단일 모델 기준으로 최다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엑셀 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차량 결함 등으로 소비자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1990년부터 판매량이 급감했다. 한 해 20만대 이상이던 현대차 전체 판매량도 10만대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두 번째 위기는 1998년 찾아왔다. 품질이 좋지 않다는 평가 속에 그해 미국 판매량은 9만1000대로 급락했다. 미국 진출 이후 최악의 성적이었다. 작년엔 연비과장 논란과 함께 엔저(低)를 등에 업은 일본차의 공세라는 세 번째 위기를 맞았다.
○고급화 전략이 올해 승부수
세 차례 위기에도 현대차가 800만대 기록을 작성한 것은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 덕분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1990년 후반 미국 시장에서 고전하던 현대차는 정 회장이 취임한 1999년부터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정 회장의 품질중시 전략 성과가 빛을 발하면서부터다.
현대차는 2003년 미국 소비자잡지 컨슈머리포트 품질조사에서 2위에 올랐다. 2004년엔 미국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 도요타에 이어 사상 처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사람이 개를 물었다(man bites dog)’는 표현을 써가며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현지화 전략도 주효했다. 현대차는 2005년 앨라배마공장(연산 30만대)을 준공, 미국 시장 공략 속도를 높였다. 현대차 관계자는 “1990년대 1% 안팎이던 시장 점유율을 지난해 8.9%(기아차 포함)로 높였다”며 “작년 전체 판매량에서 중·대형차 비중이 30% 이상일 정도로 브랜드 고급화도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올해 미국 시장 판매목표를 73만4000대로 작년보다 4%가량 늘려 잡았다. 목표 달성을 위해 싼타페 7인승 모델과 에쿠스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을 계획이다. 변수는 있다. 일본차의 공세 속에 올해 고전이 예상된다. 현대차 측은 “올해 물량 공세보다는 내실을 다지고 에쿠스, 제네시스 등 고수익 모델을 내세워 위기를 돌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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