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北核 제재, 유엔에만 맡겨둘 수 없다

입력 2013-03-10 17:02   수정 2013-03-10 23:54

핵 실전배치에 올인하는 북한
무력타격 핵심 빠진 유엔제재안…독자적 北억지력 확보 검토해야

이정훈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jh80@yonsei.ac.kr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7일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 결의안 2094호를 1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에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 ‘불가침 합의 무효화’ ‘제2의 조선전쟁’ 등 쉴 새 없이 독설을 퍼부으며 한반도를 극도의 긴장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실전배치를 목표로 하는 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당분간 보류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됐다.

지난 1월 22일 제3차 대북 제재 결의안 2087호가 채택된 지 불과 44일 만에 등장한 이번 결의안은 북한 은행의 해외 신규 활동 금지, ‘벌크 캐시(대량현금)’의 밀반입 단속, 대량살상무기 전용우려 물품 이동 차단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기존 결의안에 권고 사항으로 돼 있던 해운, 금융 관련 제재 항목이 의무 사항으로 바뀐 점도 이번 제재가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對)이란 제재에 버금간다는 이번 대북 결의안이 북한을 상당히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보는 이유이다.

그러나 북한의 불쾌지수는 오를지 몰라도 ‘핵 질주’ 그 자체가 중단될 거라고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김정은 역시 핵무기만 있으면 아무도 ‘김씨 왕조’ 체제를 건드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앞세운 북한의 비대칭 군사력은 대한민국의 경제적, 군사적 우위를 단숨에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의 ‘핵 보유국’ 선택은 예상 가능했던 부분이다.

지난 20년이 넘게 국제사회는 북한과 핵 줄다리기를 해왔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듯 말 듯 하면서 세 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했고, 결국 핵무기 실전배치의 문턱까지 오게 됐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거듭된 도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다양한 제재 조치는 별 효과 없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북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제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기존 1718·1874호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품목과 ‘이중용도’ 물자 수출입 통제에 주로 초점을 맞추면서 제재 조치를 유엔 회원국에게 권고하는 정도였다. 2087호는 기존 제재 조치를 확대강화는 했지만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지 무려 42일 만에 안보리에서 통과됐기 때문에 그 효과가 많이 떨어졌다. 즉, 유엔 안보리 및 핵확산방지조약(NPT)의 미비한 대응과, 중국의 한결 같은 ‘평양 감싸기’ 정책이 북한의 거침없는 행동을 부추긴 게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북한이 첫 핵실험을 한 2006년 이전에 평화 위협 행위에 대해 무력 사용을 가능케 하는 유엔헌장 7장의 42조가 포함된 제재 조치를 안보리에서 취했다면 북한의 선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또 중국이 일찌감치 중국 내의 북한 통치자금을 통제하는 동시에 원유, 석유제품, 식량 공급을 일부라도 끊으면서 북한을 압박했다면 상황은 역시 달리 전개됐을 것이다. 결국 국제사회는 북한과의 물리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북 정책을 펼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북핵 위기라는 엄청난 대가를 우리가 지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통과된 대북 제재 결의안 2094호가 기존 조치를 강화한 최고 강도의 결의안이라고 하는데 맞는 얘기인지 의문이다. 핵심 조치들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유엔 헌장 7장 42조도 여전히 없고, 북한을 곧바로 위기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중국의 적극적인 경제 제재도 없다. 북한이 도대체 뭘 더 해야지 이런 조치들이 가능케 되는 것일까. 추가 핵실험을 저지할 수 있는 수단들이 있음에도 이를 사용하지 않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유엔 안보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 실전 배치에 모든 것을 걸었다. 최근에는 아예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북핵 불용’을 원칙으로 하는 박근혜 정부는 이번 기회에 국제사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핵 억지력을 강구해야 한다. 적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전쟁도 감수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자세를 참고 삼아 북핵문제를 다룬다면, 궁극적으로 진정한 신뢰프로세스를 통한 자유 통일도 한 걸음 가까워질 것이다.

이정훈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jh80@yonsei.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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