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94)이 남대문시장에서 ‘꿀꿀이 죽’과 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 서민을 목격한 것은 1960년대 초였다. 6·25전쟁이 끝나고 모두가 굶주렸던 시절, 서민들의 굶주린 삶에 충격을 받은 전 명예회장은 ‘한국사회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라면을 들여오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 묘조(明星)식품으로부터 라면 생산 기술을 전수받은 전 명예회장은 삼양식품 공장에서 1963년 처음으로 라면을 생산했다. 이후 50년이 지나는 동안 라면은 한국인의 삶에서 빼놓을래야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돼 버렸다. 젊은 시인 신혜정은 2009년 발표한 그의 시 ‘라면의 정치학’에서 라면을 ‘현대 식문화의 집대성’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라면의 시작(1960년대)
‘삼양라면’이 한국에 첫선을 보였을 때 라면을 처음 접한 국민 가운데에는 라면을 옷감이나 실, 플라스틱으로 오해한 사람이 많았다. 라면을 끓이는 방법을 알리기 위해 삼양식품 전 직원과 그 가족들이 가두판매에 들어가야 했다.
삼양식품이 극장, 공원 등에서 1년 이상 무료 시식을 진행하고 나서야 라면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후 행사가 있을 때면 ‘라면을 끓일 때 나는 향’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라면시장 태동기였던 1960년대 모습이다.
삼양이 처음으로 라면을 선보이고 2년이 지나서 농심(당시 롯데공업주식회사)이 ‘롯데라면’을 내놓고 후발주자로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1960년대 혼·분식 장려 정책으로 라면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삼양, 농심을 비롯해 7~8개 회사가 시장에 뛰어듦에 따라 라면시장에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기도 했다.
○황금기(1980년대)
1980년대 한국사회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고도성장기를 맞았다. 이 시기는 ‘라면 역사의 황금기’라 불릴 만하다.
농심의 ‘너구리’(1982년) ‘육개장사발면’(1982년) ‘안성탕면’(1983년) ‘짜파게티’(1984년) ‘신라면’(1986년)과 팔도(당시 한국야쿠르트)의 ‘팔도비빔면’(1984년) ‘도시락’(1986년), 오뚜기의 ‘진라면’(1988년) 등 지금까지도 라면시장을 이끌고 있는 베스트셀러들이 이 시기에 한꺼번에 선보였기 때문이다.
라면산업사(史)에 영원히 기록될 굵직굵직한 ‘사건’도 잇따라 발생했다. 이전까지 라면시장 부동의 1위였던 삼양식품과 2등이었던 농심의 시장 점유율이 1985년 3월을 기점으로 역전돼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1989년에는 검찰이 “삼양라면이 ‘먹을 수 없는 공업용 우지’로 라면을 만들었다”고 발표하면서 한국사회에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우지파동’이다.
○음식 한류 주역으로 부상(2010년대)
많은 라면업계 종사자가 아직까지도 라면이 ‘배고팠던 시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그도 그럴 것이 라면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음식 한류’의 주인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농심은 신라면을 지구의 ‘지붕’이나 다름 없는 네팔의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부터 지구 최남단 도시인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80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해외 매출 4억5000만달러를 달성했고 올해는 5억7000만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초 세계 1위 대형마트인 월마트와 제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미국 전역으로 시장을 확대해가고 있다. 영국의 4대 대형마트 가운데 하나인 모리슨에도 제품을 공급하기로 했다.
오뚜기는 미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유럽에 진라면 등 대표 상품들을 수출하고 있다. 2010년 100억원 상당의 수출 실적을 올린 지 2년여 만에 2배를 훌쩍 넘어서 지난해에는 수출로 220억원을 벌어들였다.
팔도는 현재 60개국 120곳의 유통망에 제품을 수출하면서 지난해 3500만달러어치를 해외에서 팔았다. 팔도의 ‘도시락’은 러시아 지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맥도날드 햄버거와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면 길이가 약 49m에 달하는 라면은 온갖 진액과 분말로 만들어지는 진한 국물을 앞세워 이제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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