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학벌사회 꼬집는 '패싸움의 낭만'

입력 2013-03-13 18:08   수정 2013-03-13 20:47

제1회 한경 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당선작

최지운 '옥수동 타이거스' 민음사서 출간



2007년 서울 옥수동에 있는 동호공고가 폐교 위기에 처했다. 1998년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초등학교 설립을 요구하면서다. 서울시교육청은 동호공고를 이전하고 그 자리에 초등학교를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동호공고가 갈 곳은 없었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이 학교를 ‘집값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여겨 이전시키려 했다는 의심과 맞물리면서 동호공고 이야기는 사회문제로 불거졌다.

‘동호공고 폐교 논란’을 소재로 한 최지운의 장편소설 《옥수동 타이거스》(민음사)가 출간됐다. 제1회 한경 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인 이 소설은 신춘문예 심사에서 ‘사회성과 재미를 겸비한 작품으로, 형식 면에서도 앞으로 나올 새로운 소설의 출현을 예견한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소설은 서울 성동구와 중구를 가르는 매봉산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한때 하위 5%의 빈민층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이 동네는 응봉근린공원을 경계로 계층이 나뉘어 있다. 매봉산 오른편의 달동네가 모두 재개발되면서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는 내로라하는 문제아들이 모인 ‘용공고’가 있다. 어느 날 이 학교에 서울시교육청의 이전 명령이 내려온다. 불순한 학생들이 모인 용공고가 주변 학교의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였지만, 이는 핑계일 뿐이다. 사실은 고층 아파트 단지에 들어온 사람들이 교육청에 로비를 벌인 결과였다. 자신들의 아이들이 다닐 초등학교를 마련하기 위해 용공고 터에 눈독을 들인 것이다. 이전할 곳을 마련하지 못한 용공고는 이제 폐교될 위기에 처한다.

용공고에는 싸움을 잘하는 다섯 녀석이 모여 결성한 ‘오호장군’이라는 폭력 서클이 있다. 주변에서는 문제아로 보지만, 이들은 용공고생들이 ‘천한 공돌이’라며 차별받을 때에만 ‘현대판 임꺽정’ 같은 낭만으로 주먹을 쓴다. 한편 아파트 단지 근처에는 우수한 시설과 명성을 자랑하는 ‘중앙외고’가 있다. 이 학교의 폭력 서클 ‘캡틴파이브’는 용공고가 폐교되기 전 오호장군을 꺾어 만년 2인자의 설움을 풀 계획을 세운다.

재개발이라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배경으로 하지만 소설 전개는 오히려 경쾌하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지점은 어른들의 이해관계가 아닌 아이들의 ‘순수한 싸움’이다. 정직한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작가는 우회적으로 현실을 비판한다.

‘반드시 상대를 꺾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 최강자가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싸움의 세계였다.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진리가 유일하게 통하는 곳이기도 하였다.’(118쪽)

《옥수동 타이거스》에 대한 독자들의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한 누리꾼은 “소설을 읽고 진정한 행복은 학벌순이 아니라는 걸 매일 숨 쉬면서 느낀다. 아직도 학벌만 중요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껍데기뿐이다. 이런 소설은 꼭 읽어줘야 제맛”이라고 평했다.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다른 누리꾼은 “이른바 명문고를 다닌 나도 공고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며 “이 책을 보니 나 자신이 얼마나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계층 간 격차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생각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에 대해 “지역과 교육의 분할이라는 당대의 첨예한 문제를 다루며 현재성을 확보하고 ‘오호장군’의 발랄한 활극으로 극적인 흥미를 보장한다”며 “이 작품은 중산층이 사라진 시대에 대한 무언의 고발”이라고 평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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