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빈자리'에 감사원 출신 득세

입력 2013-03-13 18:19   수정 2013-03-14 03:00

2011년 저축은행 사태때 금감원 '감사 추천제' 없애
올해 만기도래 27곳 '주목'



억대 연봉에 ‘신이 내린 자리’로도 불리는 금융사 상근감사 자리로 감사원 고위직 출신들이 빠르게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금융감독원이 2011년 초 금융사 감사에 퇴직자를 보내지 않기로 결정한 뒤 이런 추세는 갈수록 뚜렷해졌다. 과거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집단)’가 누린 위세에 빗대어 ‘금피아’가 빠져나가자 ‘감피아’가 득세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올해 감사 임기가 끝나는 금융회사는 줄잡아 27곳. 막강한 권한을 쥔 감사원과 금감원의 틈바구니 속에서 금융사들은 후임 감사 인선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신한은행의 사례

4대 시중은행 중 신한은행에는 상근감사가 없다. 작년 3월 주총에서 상근감사제를 폐지했다. 신한이 상근감사 자리를 없앤 사연은 금감원과 감사원 간 복잡한 역학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 낀 금융회사의 고충을 여실히 보여줬다.

2011년 초 신한은 이석근 당시 금감원 부원장보를 감사로 내정했다. 하지만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면서 금감원 출신 저축은행 감사들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이에 금감원은 금융회사에 대한 감사추천제도를 없애 퇴직자들이 저축은행은 물론 전 금융권의 감사로 진출하는 길을 차단했다.

신한은 어쩔 수 없이 원우종 감사를 1년 연임시켰다. 2012년 초. 원 감사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자 신한은 심의영 전 금감원 국장을 감사로 선임하기로 결정하고 금감원의 입장을 타진했다. 금감원이 강하게 반대하자 한동우 신한지주 회장과 서진원 행장은 권혁세 금감원장, 최수현 수석부원장을 만나 묵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권 원장은 당시 “아직을 그럴 때가 아니다. 선임하면 곤란하다”는 취지로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 퇴직자를 보내려는 감사원의 움직임이 가시화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인사는 “감사원 쪽에서 자기 사람을 보내려고 했다”며 “신한이 감독원 대신 감사원 출신을 받아들이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다고 판단해 상근감사제를 아예 없앤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감사원은 그해 상반기 ‘금융권역별 감독실태’에 대한 감사를 벌였고, 신한은행이 학력에 따라 금리를 차등 적용한 사실을 금감원이 묵인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이 이례적으로 민간 금융회사를 지목한 것을 두고 “신한이 감사원에 단단히 찍혔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감사원 영역 확대, “금감원 족쇄 풀어야”

금감원 퇴직자에 ‘족쇄’가 채워진 이후 감사원 출신들이 금융 공기업과 민간 금융회사 감사에 속속 선임되기 시작했다.

현재 금융권에서 감사원 출신이 상근 감사로 있는 곳은 10여곳에 이른다. 김용우 우리은행 감사(감사원 제2사무처장) 신언성 외환은행 감사(공직감찰본부장) 김성홍 NH농협증권 감사(국방감시단장) 정태문 삼성카드 감사(공공기관 감사국장) 조규호 삼성자산운용 감사(공공기관 감사국장) 등이다. 경력 등을 보면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인사도 적지 않다.

금감원 출신의 감사 선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금융회사가 감사원 출신을 선호하는 것도 ‘감피아’의 영역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감사원 출신을 통해 금감원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감사원 출신을 쓰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며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 감독권을 쥔 금감원을 감사하는 곳이 감사원이고, 금감원의 감사 역시 감사원 출신이 차지하고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금융회사로서는 금융권 감사로 진출한 감사원 선후배들 간 친분을 다각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금감원 퇴직자들의 족쇄를 공직자윤리법에 맞게 풀어줘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금감원 퇴직자들이 오랜 기간 쌓아온 노하우를 활용하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획일적인 잣대로 직업선택의 자유까지 침해한 건 과도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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