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자원의 저주'…기술·창의와 결합해야 '축복'

입력 2013-03-15 11:25  


한 나라의 경제력을 좌우하는 요인들은 많다. 풍부한 천연자원, 우수한 인재, 기업가 정신, 탁월한 지도자는 경제를 번성시키는 핵심 요소들이다. 하지만 자원은 때로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자원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자원으로 인해 국민성이 게을러지고 창의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원유가 넘쳐나 이른바 ‘오일 머니’로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있는 중동 산유국의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국민소득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대부분 취약한 것은 이를 잘 설명한다. 흔히 쓰이는 ‘자원의 저주’는 넘치는 자원이 오히려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우디 석유는 반드시 축복일까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생산과 매장량에서 세계 최대 국가다. 당연히 에너지 부국이다. 사우디 GDP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는다. 국가 재정에서 차지하는 석유의 위상은 더 압도적이다. 2012년 재정수입 중 석유의 비중은 90% 정도로 추정된다. 사우디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석유산업의 모든 수입이 정부에 귀속되기 때문에 재정의 대부분을 세금에 의존하는 나라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국민들에게서 거둬들인 세금으로 국가 재정을 확보해 이를 다시 국민소득 증대에 활용하는 구조가 아니라 자원(석유) 수출을 통해 얻은 수익을 국민들에게 재분배하는 성격이 강한 경제구조다. 사우디 경제는 한마디로 생산국가라기보다 분배국가인 셈이다. 재정이 풍부하고 국민의 세금부담이 거의 없는 나라 사우디아라비아. 하지만 사우디를 경제대국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식 실업률은 10%를 훌쩍 넘는다. 전체 인구의 60%에 이르는 30세 미만의 청년층 실업률은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다. GDP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중이 10%에도 못 미쳐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영향도 있지만 사우디 젊은이들은 힘들게 일할 필요를 못 느낀다. 사우디인들이 꺼리는 일자리는 아시아 각국에서 몰려온 노동자들이 메운다. 전체 고용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을 것이란 게 일반적 분석이다.

#자원의존 심화…기술발전 정체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례는 흔히 말하는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를 잘 설명한다. 자원의 저주는 자원이 풍부한 국가일수록 경제성장은 오히려 둔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런 현상은 왜 생길까. 원인은 크게 네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생산의 대부분을 지하자원에 의존하는 탓에 서비스업이나 제조업 발전이 더디다. 둘째, 광업에 생산력을 집중하기 때문에 첨단산업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진다. 셋째, 자원을 선점한 기업은 채굴외에 다른 투자를 하지 않아 기술발전 속도가 느리다. 넷째, 정부 역시 자원을 통해 들어오는 재정이 풍부하기 때문에 다른 산업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 하나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도 진정한 의미의 경제선진국엔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즉 ‘자원의 저주’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구리 특수를 누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적 밀 수출국 카자흐스탄도 외국인 배척시위와 국내 밀값 상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엄청난 자원수입이 공정하게 분배되지 못하고 극히 일부 계층만 이를 독점함으로써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브릭스 국가(중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풍부한 천연자원과 인구를 바탕으로 1990년대 말부터 경제발전에 속력을 내면서 자원의 저주에서 벗어나고 있는 나라들도 늘어나고 있다. 자원의 저주를 ‘자원의 축복’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자원저주를'자원축복'으로

‘자원의 축복’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를 일컫는 말이다. 브라질 앙골라 보츠와나 등 자원부국은 정치안정이라는 기틀을 다진 뒤 자원수출 의존도를 낮추는 등 산업을 다변화하고 있다. 인프라(사회간접자본)를 건설하고 선진 금융제도를 갖춰 외자유치를 꾀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아프리카 제2의 산유국인 앙골라는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경제개발을 위한 정부 지출을 확대하고 내전으로 파괴된 병원이나 학교 등 인프라 건설 확충에 힘쓰고 있다.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 22%를 점유한 보츠와나도 인프라 건설, 건강·교육 부문 투자, 외자유치, 규제완화 등으로 아프리카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 자원의 빈곤을 딛고 경제성장을 이룩한 대표적 국가다. 개방과 경쟁, 창의, 기업가정신이 자원부족이란 핸디캡을 상쇄한 결과다. 원유가 한방울도 나지 않으면서 석유제품은 한국의 대표적 수출상품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는 무역의존도가 심해졌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전세계가 기업인이 누비는 운동장이 된 셈이다. 개방으로 인한 불안감도 높았지만 문을 활짝 연 산업일수록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도 입증했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풍부한 지하자원이 오히려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다는 이른바 ‘자원의 저주’가 왜 생겨나는지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공부해 보자.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이유를 토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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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식 석유 복지와 정반대  '노르웨이 국부펀드'

차베스식의 퍼주기식 석유복지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 나라가 바로 노르웨이다. 노르웨이는 ‘석유의 저주’를 우려했다. 풍부한 석유는 적절한 정책과 결합되지 않으면 오히려 국민을 나태하게 만들고, 기름수출에 따른 외화유입으로 자국 통화가치가 높아지고, 이로 인해 제조업 수출기반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빈곤층 지원을 위해 돈을 많이 풀어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국민을 나태하게 만드는 등 후유증을 겪고 있다.

노르웨이는 석유생산과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국부펀드로 조성했다. 원유펀드로 시작된 이 펀드에 들어 있는 돈은 6000억달러 이상이다. 노르웨이 국내총생산(GDP) 5000억달러보다 많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다.

노르웨이는 원유판매 수익이 일시에 국내로 밀려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익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저축하거나 금융상품 등에 투자했다. 노르웨이의 미래를 위해 저축한 것이다. 고령화에 대비해야 하고 환율,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려는 계획도 깔려 있다.

노르웨이가 이런 정책을 쓴 것은 1970~80년대 원유 수출로 경제가 엉망이 된 뒤부터다. 자국 통화인 크로네의 가치가 치솟아 제조업 수출이 큰 타격을 입었다. 달러가 왕창 들어온 탓에 달러는 싸지고 자국 통화는 비싸지는 메커니즘 때문이었다. 원유 수출에 대한 국가경제 의존도도 심해졌다. 자연자원이 발견되면 제조업이 붕괴한다는 이른바 ‘네덜란드병’ 그 자체였다. 네덜란드도 북해에서 대규모 천연가스 자원을 발견한 뒤 쏟아져 들어온 외화 때문에 ‘자국통화 강세→수출악화→제조업 기반 붕괴’ 과정을 밟았다. 차베스가 일찌감치 배워야 했던 국부펀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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