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8할은 도서관"…독학 1년반 기계과 마치고 매출 700억 '기계쟁이'되다

입력 2013-03-15 16:56   수정 2013-03-16 00:41

파워기업인 생생토크 - 한금태 삼영기계 사장

실린더 라이너 등 국산화…美·獨·동남아 등 20國 수출
250년 디젤엔진 원조…獨 MAN도 품질에 반해
"성실하게… 남의 말 조심"…어머니 가르침 평생 새겨




서울 행당동 한양대 중앙도서관, 한 학생이 이곳에 들어섰다. 남들은 수업에 들어가는데 그는 밤낮으로 도서관에서 살았다. 휴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목표는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모든 기계공학 공부를 마치는 것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낼 수 없었던 그는 대학을 휴학하고 기계설계, 유체공학 등 대학 정규과정을 1년6개월 만에 끝내기로 작정했다. 친구의 커리큘럼을 구해 계산해보니 한 달 반 만에 한 과목을 떼면 이 기간에 학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그는 기계는 물론 재료 금속 등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이때가 1960년대 초.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이 학생은 20여개국에 수출하는 매출 700억원대의 엔진 부품업체를 일궈냈다. 충남 공주에 있는 삼영기계의 한금태 사장(72)이다.

그는 손수 기관차와 선박용 엔진의 핵심 부품인 실린더의 라이너와 헤드, 피스톤을 국산화했다. 이를 미국 동남아시아 등에 수출하는 것은 물론 독일의 세계적인 기업인 MAN에도 공급한다. 독일 뮌헨에 본사를 둔 MAN은 25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으며 트럭·버스·디젤엔진·터보기계·장갑차 등을 만드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디젤엔진의 원조다. 디젤기관을 발명한 루돌프 디젤이 이 회사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한 사장은 “MAN에 납품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품질을 인정받는다는 것을 뜻한다”며 “MAN은 우리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에 대해서 삼영마크보다 MAN 마크를 붙여 파는 것을 권유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 가운데 피스톤과 엔진헤드는 지식경제부의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됐다.

삼영기계의 본사 및 주공장은 공주에, 2공장은 논산에 있다. 종업원은 400명, 작년 매출은 약 700억원에 달했다. 한 사장은 “수출 비중이 25%를 차지하지만 로컬 수출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해외로 나가는 제품은 70~80%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이 분야에서 강한 기업을 일궈냈을까.

첫째, 50년 동안 기계 분야 외길을 걸으며 쌓은 노하우다. 한 사장의 부친은 땅을 사서 집을 지어 팔았다. 요즘 말하면 건축업을 한 것이다. 서울 원효로에 집을 지었으나 홍수로 집이 물에 잠겨 팔리지 않자 꼼짝없이 빈털터리가 됐다. 서울대 법대를 다니며 법대 학생회장까지 지낸 형은 졸업 후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역시 어려움에 처했다. 둘째인 그의 어깨에 동생 3명과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이 걸려 있었다. 대학을 중퇴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서울 문래동의 중앙기계에 입사한 뒤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도서관에서 터득한 기계설계 기술이 바탕이 된 것은 물론이다. 이때 받은 월급을 전부 어머니께 드렸다.

폐결핵에 걸려 군 입대 신체검사를 두 번이나 떨어진 그는 세 번째 검사에서 합격해 현역으로 군 생활을 마친 뒤 중앙기계에 재입사했다. 이후 제일기계를 거쳐 1975년 창업했다.

이때부터 진가가 발휘됐다. 대전에서 20여명의 직원을 데리고 창업해 선박용 엔진 부품부터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실린더 헤드·라이너 피스톤도 속속 국산화했다. 기관차용도 개발해 철도청에 납품했다. 이들은 선박과 기관차의 심장인 엔진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품에 속한다. 주로 독일 일본 등지에서 수입해오던 것을 국산화한 것이다.

둘째, 공부하는 자세다. 한 사장은 “책 속에 길이 있다”며 “책만 읽을 줄 알면 어떤 해답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엔진 부품을 개발하려면 단지 기계 원리만을 알아선 안 된다. 주물과 단조를 공부해야 하고 이에 앞서 금속과 금형 유체공학 기계설계 등을 알아야 한다. 그는 일본어도 독학으로 공부한 뒤 기계 금속 주물 단조 등에 관한 책을 독파했다.

일본에 정밀주물금형을 주문하러 갔다가 굴지의 금형 장인들에게 90도 인사를 받기도 했다. “일본을 방문해 정밀주조금형을 깎아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건 못 깎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장 어려운 부분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더니 가장 선임자가 일어나 깍듯이 인사하더군요.”

일본은 독일과 더불어 세계 금속가공의 양대 산맥이다. 자존심이 강한 60대 일본 장인들이 자신들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새파란 한국인에게 인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는 각종 서적을 독파해 얻은 아이디어가 샘솟듯 떠오른 덕분이다.

그는 “각 분야를 종합적으로 공부하면 한 가지만 공부한 사람에 비해 훨씬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주물 주조에 특기가 있어 삼영기계가 생산하는 주물제품에 대해선 자신의 이니셜을 따 ‘GT메탈’이라는 브랜드를 쓰고 있다.

셋째, 성실한 마음가짐이다. 그는 누가 보든 안 보든 똑같은 자세로 일한다. 이는 어머니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그의 모친은 한 사장이 사회에 나갈 때 두 가지를 당부했다. ‘일을 할 때는 항상 등 뒤에 주인이 있는 듯이 생각하고 하라’ ‘남의 말을 할 때는 그 사람이 옆에 있는 듯이 생각하고 하라’는 것이었다.

한 사장은 “평생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사회생활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고 수입제품을 속속 국산화해 대통령표창, 석탑·철탑산업훈장과 국무총리 및 상공부장관 표창을 받고 현대중공업에서 3회나 부품국산화 공로패를 받은 것도 이런 자세 덕분이다. 그는 공주에 250억원을 투자해 새로운 공장을 짓고 올해 초 본사를 이곳으로 이전했다. 칠순을 넘긴 그는 이제 공주 시대를 맞아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그의 꿈은 ‘내가 만든 제품으로 세계 1등을 하는 것은 물론 한국에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해보는 것’이다.


공고졸업 4년후 연봉…대졸초임보다 더 지급

한금태 삼영기계 사장은 최근 공주 공장을 완공하면서 직원들이 깨끗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시켰다. 자신이 서울 문래동 기계 및 주조회사에 첫발을 내디딘 뒤 50년 동안 작업복을 입고 현장을 지켜봤고 40년 가량 기계와 주물공장을 경영해 왔기 때문에 작업 환경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안락한 기숙사와 헬스클럽, 멋진 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구내식당을 갖추고 있다. 한 사장은 “공고 졸업 후 4년이 지나면 대졸자 초임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다”며 “학벌과 관계없이 본인이 노력하고 도전하면 길을 열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등록금이 없어 대학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점을 감안해 인근 대학생 등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아울러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잘못된 관행을 하나씩 고쳐가고 있다.

특히 오랫동안 본사가 있던 대전지역 업체들의 발전을 위해 1993년부터 20년간 대전산업단지협회장을 맡아오며 이 지역 기업들의 애로 해결과 발전을 위해 뛰고 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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