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에서 환히 달려오는 꽃소식
그 기적을 맞으러 밖으로 달려가 직립인류의 위엄을 뽐내며 걷자
장석주 < 시인 kafkajs@hanmail.net >
경칩이 지난 뒤 얼음이 녹은 안성의 금광호수로 흘러드는 하천마다 산개구리들이 내려와 운다. 시골에 처음 정착을 했을 때 산개구리 소리를 듣고는 밤새가 청승맞게 우는 소리로 오인했다. 산나물을 반찬으로 현미밥 반 공기를 먹은 뒤 어둠이 내려앉은 서재에 호젓하게 앉아 호르르호르르 울어대는 산개구리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짝짓기를 위해 저토록 우는 것이겠지만, 내 귀에는 산개구리들이 살아 있다고 외치는 신호로만 들린다. 어쩌다가 이 찰나 나는 시골에 있으며 산개구리 울음소리를 듣는가? 시간의 연속성에서 떨어져나와 섬처럼 고립돼 산개구리 소리에나 귀 기울이는 이 찰나는 영원의 흐름 속에서 더욱 또렷한 실감을 얻는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사람은 영원을 겪어낼 수 없으며 그것을 객관적으로 대상화할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영원에 대해 관조하는 것, 삶이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그 무엇이라면, 나는 지금 여기의 시간과 다른 낯선 느낌으로 영원의 흐름을 어렴풋하게나마 더듬어보는 것이리라.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온다. 산골 움집 처마에 매달렸던 투명 고드름들은 녹고, 폭설 내린 뒤에 먹이를 찾아 마을까지 내려오던 산짐승들도 산 속으로 돌아간다. 어느덧 바람은 싱그러운 미나리 냄새를 풍기고, 계곡엔 눈 녹아 흐르는 물소리가 청량하다. 산약초 뿌리들을 먹고 푸르디푸른 몸이 뜨거워 맨발로 뛰어놀던 볼 붉은 산골 아이들도 겨우내 키가 한뼘이나 자라난다. 매화의 꽃눈들이 도톰해질 무렵, 울타리 아래 작약의 촉들이 땅 위의 푸른 뿔처럼 돋는다. 무엇보다도 먼저 봄을 알리는 것은 동백, 매화, 산수유, 벚꽃, 이팝꽃, 개나리꽃, 진달래꽃 따위의 봄꽃들이다. 융융한 흐름으로 밀려오고 밀려가는 봄꽃들! 봄꽃들은 소태같이 쓰디쓴 날들을 살아내는 우리 마음에 위안이 되고 기쁨의 불꽃을 일으킨다. 그래서 시인은 만개한 꽃들이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 같고,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뜨리는 몸뚱아리들”(서정주, ‘상리과원’)이라고 노래했을 것이다.
햇볕이 도타워지면서 남녘에서 꽃소식이 올라온다. 해남 미황사의 동백, 섬진강변의 매화들, 구례의 산수유꽃들이 봄과 함께 북상을 한다. 북상 속도는 시속 1.06㎞. 17일경 서귀포에서 피는 벚꽃은 4월 9일쯤에는 서울의 여의도 윤중로에 도착한다. 저 화사한 꽃들만 봄의 전령사 노릇을 하는 게 아니다. 노루귀, 현호색, 양지꽃, 뿔냉이, 큰개불알꽃, 제비꽃 같은 작은 풀꽃들도 얼었다가 녹은 땅에서 지천으로 피어나 이땅에 봄이 왔음을 선포한다. 그것들은 작아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있는지조차 모른다. 눈밝은 한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라고 노래한다. 땅 위에 소슬하게 피어나는 작은 풀꽃도 무릎을 꿇고 자세히 보아야 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모든 사랑이 그런 것이라고 작은 풀꽃들이 우리에게 귀띔해준다.
봄은 걷기에 좋은 계절이다. 이 봄에는 걷자, 하염없이. 들길과 산길들 여기저기를 해찰하면서 종일을 걸어보자. 직립인류의 위엄을 뽐내며 걷자. 걸으며 심호흡을 하고 산소를 들이마시자. 뇌의 심오한 회로들이 봄의 대지와 대지 속에 있는 빛과 향기들에 취해 몽롱해진다. 땅을 밟을 때 발바닥을 거쳐 허벅지, 그 뼈와 근육들로 올라오는 대지의 기를 빨아들이자. 심장 박동이 빨라지지 않는가? 혈관의 핏속으로 낙관주의와 기쁨들이 섞이고 번지는 게 느껴지는가?
봄이 이미 저기 와 있다. 봄의 대지와 바람이 기다리고 있다. “잊지 말라. 대지는 당신의 맨발을 느끼며 기뻐하고, 바람은 당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놀기를 열망한다는 사실을.”(칼릴 지브란) 철학자가 아니라도 우리는 자연의 만물에는 놀라운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안다. 봄의 찬란함은 그 만물에 일어나는 기적이다. 그 기적을 맞으러 나가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장석주 < 시인 kafkajs@hanmail.net >
▶ "이효리 제주도에 신혼집 마련" 알아보니
▶ 이경규 '꼬꼬면' 눈물 흘린 이유가…
▶ 성폭행 아니라던 박시후, A양 얼굴 맞대고
▶ "야동 못 끊는 남편 어쩌죠" 女교수 대답이…
▶ 이경규 딸, 라면 CF서 '폭풍 미모` 뽐내더니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그 기적을 맞으러 밖으로 달려가 직립인류의 위엄을 뽐내며 걷자
장석주 < 시인 kafkajs@hanmail.net >
경칩이 지난 뒤 얼음이 녹은 안성의 금광호수로 흘러드는 하천마다 산개구리들이 내려와 운다. 시골에 처음 정착을 했을 때 산개구리 소리를 듣고는 밤새가 청승맞게 우는 소리로 오인했다. 산나물을 반찬으로 현미밥 반 공기를 먹은 뒤 어둠이 내려앉은 서재에 호젓하게 앉아 호르르호르르 울어대는 산개구리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짝짓기를 위해 저토록 우는 것이겠지만, 내 귀에는 산개구리들이 살아 있다고 외치는 신호로만 들린다. 어쩌다가 이 찰나 나는 시골에 있으며 산개구리 울음소리를 듣는가? 시간의 연속성에서 떨어져나와 섬처럼 고립돼 산개구리 소리에나 귀 기울이는 이 찰나는 영원의 흐름 속에서 더욱 또렷한 실감을 얻는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사람은 영원을 겪어낼 수 없으며 그것을 객관적으로 대상화할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영원에 대해 관조하는 것, 삶이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그 무엇이라면, 나는 지금 여기의 시간과 다른 낯선 느낌으로 영원의 흐름을 어렴풋하게나마 더듬어보는 것이리라.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온다. 산골 움집 처마에 매달렸던 투명 고드름들은 녹고, 폭설 내린 뒤에 먹이를 찾아 마을까지 내려오던 산짐승들도 산 속으로 돌아간다. 어느덧 바람은 싱그러운 미나리 냄새를 풍기고, 계곡엔 눈 녹아 흐르는 물소리가 청량하다. 산약초 뿌리들을 먹고 푸르디푸른 몸이 뜨거워 맨발로 뛰어놀던 볼 붉은 산골 아이들도 겨우내 키가 한뼘이나 자라난다. 매화의 꽃눈들이 도톰해질 무렵, 울타리 아래 작약의 촉들이 땅 위의 푸른 뿔처럼 돋는다. 무엇보다도 먼저 봄을 알리는 것은 동백, 매화, 산수유, 벚꽃, 이팝꽃, 개나리꽃, 진달래꽃 따위의 봄꽃들이다. 융융한 흐름으로 밀려오고 밀려가는 봄꽃들! 봄꽃들은 소태같이 쓰디쓴 날들을 살아내는 우리 마음에 위안이 되고 기쁨의 불꽃을 일으킨다. 그래서 시인은 만개한 꽃들이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 같고,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뜨리는 몸뚱아리들”(서정주, ‘상리과원’)이라고 노래했을 것이다.
햇볕이 도타워지면서 남녘에서 꽃소식이 올라온다. 해남 미황사의 동백, 섬진강변의 매화들, 구례의 산수유꽃들이 봄과 함께 북상을 한다. 북상 속도는 시속 1.06㎞. 17일경 서귀포에서 피는 벚꽃은 4월 9일쯤에는 서울의 여의도 윤중로에 도착한다. 저 화사한 꽃들만 봄의 전령사 노릇을 하는 게 아니다. 노루귀, 현호색, 양지꽃, 뿔냉이, 큰개불알꽃, 제비꽃 같은 작은 풀꽃들도 얼었다가 녹은 땅에서 지천으로 피어나 이땅에 봄이 왔음을 선포한다. 그것들은 작아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있는지조차 모른다. 눈밝은 한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라고 노래한다. 땅 위에 소슬하게 피어나는 작은 풀꽃도 무릎을 꿇고 자세히 보아야 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모든 사랑이 그런 것이라고 작은 풀꽃들이 우리에게 귀띔해준다.
봄은 걷기에 좋은 계절이다. 이 봄에는 걷자, 하염없이. 들길과 산길들 여기저기를 해찰하면서 종일을 걸어보자. 직립인류의 위엄을 뽐내며 걷자. 걸으며 심호흡을 하고 산소를 들이마시자. 뇌의 심오한 회로들이 봄의 대지와 대지 속에 있는 빛과 향기들에 취해 몽롱해진다. 땅을 밟을 때 발바닥을 거쳐 허벅지, 그 뼈와 근육들로 올라오는 대지의 기를 빨아들이자. 심장 박동이 빨라지지 않는가? 혈관의 핏속으로 낙관주의와 기쁨들이 섞이고 번지는 게 느껴지는가?
봄이 이미 저기 와 있다. 봄의 대지와 바람이 기다리고 있다. “잊지 말라. 대지는 당신의 맨발을 느끼며 기뻐하고, 바람은 당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놀기를 열망한다는 사실을.”(칼릴 지브란) 철학자가 아니라도 우리는 자연의 만물에는 놀라운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안다. 봄의 찬란함은 그 만물에 일어나는 기적이다. 그 기적을 맞으러 나가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장석주 < 시인 kafkajs@hanmail.net >
▶ "이효리 제주도에 신혼집 마련" 알아보니
▶ 이경규 '꼬꼬면' 눈물 흘린 이유가…
▶ 성폭행 아니라던 박시후, A양 얼굴 맞대고
▶ "야동 못 끊는 남편 어쩌죠" 女교수 대답이…
▶ 이경규 딸, 라면 CF서 '폭풍 미모` 뽐내더니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