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청장 '깜짝카드' 황철주…'산전수전' 벤처1세대가 中企사령탑

입력 2013-03-15 17:35   수정 2013-03-16 02:21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 "도전 기회 줘야 창조경제 꽃핀다"
"소니 이긴 MP3처럼…기업가 정신 살릴 것"
"청년창업이 창조경제 이끌어 벤처인 도움 받을 곳 부족"




1986년 유럽 반도체 장비회사 ASM인터내셔널의 국내 법인인 한국ASM에 입사하면서 반도체 장비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국 한국이 반도체 장비 최대 수입국이라는 모순적인 현실이 못마땅했다. 한국ASM에서 10여년을 근무하면서 반도체 장비 기술 노하우를 쌓은 뒤 ‘반도체 장비 세계 1등 기업을 만든다’는 일념으로 1995년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고 나서 창업 16년 만에 매출 3000억원대(2011년) 기업을 일궜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장비업체 주성엔지니어링의 황철주 사장(54) 얘기다.

국내 벤처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꼽히는 황 사장이 15일 중소기업 대통령을 자임하는 박근혜 정부의 초대 중소기업청장에 내정됐다. 벤처기업인이 중기청장에 내정된 건 1996년 중기청이 출범한 이래 처음이다.
황 내정자는 중소기업 정책은 물론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인 ‘창조경제’의 씨앗을 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기회-희망-창조로 이어가는 가치 사슬이 이어져야 창조경제가 싹틀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 내정자는 “워크맨으로 승승장구한 일본 소니 등 전자기업들이 몰락한 건 MP3 영향이 컸다. 한국 벤처기업의 기술 하나가 일본 전자왕국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벤처기업의 도전정신이 살아 있을 때에만 ‘창조’가 가능하다”며 “지금은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벤처를 찾기 힘들다. 젊은이들에게 도전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창조의 씨앗인 벤처정신이 꽃을 피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 중기청장 내정자가 벤처기업 활성화에 본격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하진 새누리당 의원은 “창조경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선 새마을운동처럼 분위기를 다잡아 가야 하는데 황 후보자는 벤처를 세우고 키운 경험이 있어서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창조경제는 기존 시스템만으로는 힘듭니다. 글로벌 유통 플랫폼을 갖고 있는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새로운 도전정신이 만났을 때 가능합니다.”

황철주 중기청장 내정자는 “기업가정신으로 똘똘 뭉친 기업가들이 벤처를 많이 창업해야 창조경제가 꽃을 피울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황 내정자는 “젊은이들이 새로움에 맞설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 한 희망을 갖기는 어렵다”며 “기업가정신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1995년 창업한 주성엔지니어링은 여러 차례 ‘천당과 지옥’을 오간 것으로 유명하다. 반도체 장비로 시작해 사업 초기 승승장구했지만 최대 고객인 삼성전자와 거래가 끊기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액정표시장치(LCD)와 태양전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발 빠르게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 위기를 모면하나 싶었지만 이내 불황에 발목이 잡히는 일을 반복했다. 지난해 매출이 768억원으로 전년 대비 75% 감소하면서 투자자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어려울 때일수록 연구·개발(R&D)에 매진하라고 직원들을 독려했다”며 “올해 세계를 놀라게 할 신제품 3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 내정자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지만 신기술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중소·벤처 기업이 끈기를 갖고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황 내정자가 ‘손톱 밑 가시’ 뽑기에도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부터 중소·벤처기업을 힘들게 하는 애로사항을 해결하겠다고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황 내정자는 “창조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및 벤처기업에도 똑같은 기회가 제공될 수 있게 경제민주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황 내정자는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면 사람들의 두뇌나 지식, 자금, 기술, 시장 등에서 차이가 없다”며 “하나 없는 것이 벤처가 활성화될 수 있는 인프라, 즉 멘토링처럼 벤처들이 도움받을 수 있는 문화가 없다”고 했다. 벤처를 창업하고자 하는 사람이 어떻게 창업하는지,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지원 받을지, 창업한 이후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할지를 자문할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는 “투자는 성공할 것 같은 기업에 하는 것이 아니고 성공시켜 줄 수 있는 사람에게 해야 한다”며 “한국에는 성공시켜 줄 수 있는 기업에 하는 투자 문화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단지 돈을 투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엔젤펀드와 멘토링이 같이 이뤄져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황 내정자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은 “황 내정자는 벤처협회장 재임 기간 명품 벤처와 창조의 가치를 항상 강조하며 벤처에 대한 인식 개선 및 위상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며 “향후 중소기업의 손톱 밑 가시를 잘 뽑아 주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새 정부에서 추구하는 게 창조경제인데 여기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게 벤처기업”이라며 “벤처기업을 이끌며 얻은 다양한 경험치를 많은 중소기업에 가이드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황 내정자도 기업하는 사람이라 고민이 많긴 했지만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벤처기업협회장으로서의 경험이 창조경제를 이끌어내는 데 많은 역할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경북 고령(54) △동양공고, 인하대 △한국 ASM 근무 △주성엔지니어링 설립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제9대·10대 벤처기업협회 회장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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