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전 대통령 직접 지시로 초대 원자력과장 맡아 사업 이끌어
故 문선명 총재 만나 선문대 설립
1957년 11월 어느 날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대 물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던 윤세원 박사를 경무대(현 청와대)로 불렀다. “자네 원자력 공부했다지. 우리도 원자무기를 만들 수 있겠나.” 그로부터 2년 뒤 서울 공릉동 원자력연구소 안에 국내 첫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트 2’ 건설이 시작된다. 한국이 원자력 시대의 문을 연 것이었다.
국내 1호 원자력 국비유학생으로 원자력 분야 산증인이었던 윤세원 선문대 초대총장이 지난 16일 오후 10시 별세했다. 향년 91세.
1922년 경기 용인 출생인 윤 전 총장은 1943년 연희전문대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 우주물리학과에서 1년간 공부했다. 광복 후 귀국해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1956년 첫 원자력 국비유학생으로 뽑혀 미국 아르곤연구소에서 10개월 과정을 마쳤다.
1957년 1월 미국에서 돌아와 연구 중이던 그를 찾은 사람은 이 대통령이었다. 원자력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던 이 대통령은 그해 말 윤 전 총장을 당시 문교부 초대 원자력과장으로 발탁했다. 윤 전 총장은 1958년 원자력법제정, 1959년 원자력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 전신인 원자력연구소 설립을 주도했다. 연구용 원자로 선정, 구매, 예산 확보 등도 도맡았다.
원자력과장 시절 원자력 유학생 비용 지원을 놓고 경무대 비서실과 벌인 논쟁은 지금도 회자된다. 미국 10개월 과정 유학생 한 명에 들어가는 비용이 총 6000달러에 달했으나 당시 달러 부족에 시달렸던 비서실은 윤 전 총장의 기안을 매번 거부했다. 그러자 그는 비서실은 찾아가 “원자력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유학”이라고 설득했고 그 뒤 4년간 8차에 걸쳐 150여명의 인재가 원자력 유학길에 올랐다.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이들이 한국 원자력 연구 개발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학계로 돌아간 고인은 경희대 부총장과 성화신학교 총장을 지냈다. 1980년대 후반 통일교 창시자인 고 문선명 총재를 만나 선문대 부지 매입, 대학 인허가 등 설립을 이끌었으며 1, 2대 총장을 맡았다. 물리학 부문 학술원 회원이다.
유족으로는 자녀 일선(LIG넥스원 연구위원), 호선(호선공간도예 원장), 문선(참좋은교회 목사), 관선(아마텍 대표), 혜선(YWCA 이사), 기선(경희대 교수) 씨가 있다. 이강현 전 동아대 교수, 오준호 KAIST 대외부총장, 최유창 LIG넥스원 이사, 이중정 연세대 교수 등이 사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0일 오전 8시. 02-3010-2631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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