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 논문 평가 보니
예산 2.7배 쓰고 성과는 절반…13개 출연硏은 아예 순위밖
'규모의 경제'부터 갖춰야
1위 佛 CNRS 인력 2만5천명…국내는 평균 400~600명 규모
국가 연구·개발(R&D) 타워의 연구 성과가 대학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공동으로 벌인 대학 공공연구기관 병원 등 세계 각국 연구기관의 논문 성과 조사에서 드러난 결과다. 한 해 4조원이 넘는 R&D 예산을 쓰면서 우리나라 기술 발전을 이끌어온 정부 출연연구소들이 이제는 대학보다 연구 역량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KIST, ETRI도 500위권 진입 못해
이번 조사는 스페인계 SRG(SCImago Research Group)가 내놓는 ‘SIR 월드리포트 2012’를 기반으로 진행됐다. SRG는 2009년부터 세계 최대 학술 인용 데이터베이스인 스코퍼스(SCOPUS)에 등재된 최근 5년간 논문 수를 기준으로 연구기관 순위를 산정하고 있다. 작년 평가에선 세계 106개국 3290개 기관을 대상으로 삼았다. 국과위와 한국경제신문은 대학과 달리 이렇다 할 평가 수단이 없는 출연연구소들의 경쟁력을 확인하기 위해 이번 조사를 벌였다.
이번 조사에서 국내 출연연구소의 평균 논문 성과는 국내 지방대 수준에 불과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589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650위, 한국원자력연구원 887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1241위, 한국화학연구원 1519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1571위 등 세계 수준과도 큰 격차를 보였다. 이번 SIR 평가에 포함된 14개 출연연의 5년간 평균 논문 수는 1940건으로 산업체인 삼성전자(633위)보다 크게 떨어졌고 연구·개발(R&D) 수행 실적이 적은 안동대(2444위) 군산대(2477위)와 비슷했다. 이번 조사에서 순위권에 든 국내 대학 60곳의 평균 논문 성과는 4309건으로 출연연구소의 2배가 넘었다.
○연구비 2.7배 쓰지만 실적은 45% 불과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에 따르면 평가 대상인 14개 국내 출연연구소는 기관당 한 해 평균 1927억원의 R&D비를 썼다. 순위권에 진입한 60개 국내 대학의 평균(714억원)에 비해 예산은 2.7배 많이 쓰지만 성과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27개 정부 출연연구소 중 13곳은 한 해 논문 성과가 100건에도 못 미쳐 그나마 평가 대상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들 기관 대다수는 지식경제부 산하 산업기술연구회 소속으로 응용 연구의 비중이 높다보니 논문 발표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기술료 등 산업화 성적도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산업기술연구회에 따르면 지경부 산하 14개 출연연구소의 2011년 기술료 수입은 562억원에 그쳤다. R&D 투자비 대비 기술료 수입의 비중은 3.5%로 미국 공공연구소(19.5%),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7.7%) 등과 큰 격차를 보였다. 기술이전 1건당 수입액도 2007년 1억300만원에서 2011년 6600만원으로 뒷걸음질쳤다.
○출연연구소 통폐합 서둘러야
전문가들은 출연연구소의 연구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 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번 조사에서 1위에 오른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는 인력이 2만5000여명에 달하고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2만명, 프라운호퍼연구소 1만5000명 등 여러 연구단체가 칸막이를 허물고 연합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연구소는 400~600명 규모의 연구원을 27개 조직으로 나눠 운영하다 보니 효율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정부도 지난해 18개 출연연구소를 통합해 국가연구개발원을 세우려 했지만 대선에 매몰된 국회는 관련 법안을 논의조차 하지 않고 폐기해버렸다. 학계에서는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무엇보다 먼저 이를 재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번 조사에서 순위에 오른 14개 출연연구소의 논문 성과를 합치면 세계 58위까지 오르는 등 경쟁력을 갖춘 조직을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과위 전 정책자문관인 배영찬 한양대 입학처장(화학공학과 교수)은 “세계 주요 연구기관과 비교해 구멍가게 수준인 출연연구소의 규모와 운영을 개편하는 게 시급하다”며 “연구원 간의 칸막이를 허물어 융합 연구를 활성화하고 대학, 기업 등 연구 역량이 높아진 다른 기관과 차별화하는 출연연의 새로운 역할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특별취재팀=김태훈/김형호/김병근/김희경/은정진(중기과학부)/이정호(경제부)/최진석(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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