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자활사업 놓고 복지부-노동부 1년간 '주도권 싸움'

입력 2013-03-19 17:18   수정 2013-03-20 02:48

朴대통령이 질타한 '부처간 칸막이' 어떻길래

재정부·금융위 불통으로 재형저축 혼선
취득·소득세 통계도 부처간 숫자 큰 차이




지난 7일 국세청 홈페이지가 갑자기 마비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정부가 서민의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해 정책적으로 마련한 재형저축 상품이 처음으로 출시된 날이었다. 전산망 마비는 재형저축 가입조건인 연소득 5000만원 미만을 증명하기 위한 확인서를 떼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데 따른 것이다. 이로 인해 국세청 전산망을 통한 다른 서비스도 전면 중단돼 적잖은 국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재형저축 구조도 몰랐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상품의 조기 출시를 위한 의욕에 넘친 나머지 국세청 홈페이지 서버의 용량을 사전에 점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금융위원회, 국세청과 사전협의만 제대로 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고 말했다.

재형저축 출시에 따른 혼란은 부처 간 칸막이가 국민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처 간 칸막이 혁파를 외치고 있는 것도 이런 사례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이다. 재형저축의 경우 세제 혜택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작 상품구조에 대한 검토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 4.5%대의 고금리 혜택을 주는 것 같지만 가입 후 3년이 지나면 저축잔액이 커져 금리가 떨어지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가입자들이 은행창구에 항의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정부에 일방적으로 끌려들어간 은행도 억울하긴 마찬가지였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새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한 고용과 복지의 연계도 부처 간 칸막이에 막혀 있다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한 케이스.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와 보건복지부의 ‘희망리본사업’은 저소득층의 고용지원이라는 점에서 같은 성격의 사업이지만 지원대상은 각각 차상위계층(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 이상 120% 미만)과 기초수급자로 달랐다. 문제는 두 부처가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인 것.

결국 인수위에서 난상토론이 이어졌고 최근에야 양 부처 간 합의가 이뤄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일할 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의 자활사업은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 당장 일할 여건이 안 되는 사람은 희망리본사업이나 복지부가 진행하는 자활사업을 통해 재도전하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양쪽의 다툼을 지켜본 재정부 관계자는 “두 부처 모두 기존에 해왔던 사업과 예산배분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게 다툼의 원인이었다”며 “정작 정책수요자 입장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에 네일아트 면허를 둘러싼 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갈등도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대표적인 부처이기주의 행태로 손꼽힌다.

관계부처 장관회의의 의제를 둘러싼 부처 간 갈등 해결도 해묵은 과제 중 하나다. 재정부 관계자는 “자기 부처의 역점사업이라는 이유로 관계부처회의 안건에 올리기를 꺼리는 부처가 많다”며 “더구나 ‘우리 장관의 발표 몫’이라고 요구해오는 통에 애를 먹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통계도 칸막이에 갇혔다

통계도 문제다. 박형수 통계청장은 “부처 안의 칸막이에 갇혀 있는 통계가 많다”며 “취득·소득세만 해도 재정부와 안전행정부의 숫자가 다르다”고 말했다.

복지부의 사회복지시설정보시스템과 국세청의 세원정보,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금융거래정보 등 협업을 해야 할 분야가 많은데 통계 공유가 안 된다는 것.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국세청의 자료제공 거부로 지역가입자들의 건보료를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용근로자 549만명의 소득정보를 비롯해 65만명에 달하는 양도·상속·증여소득자 정보 등이 대표적이다. 연 소득 4000만원 미만의 금융소득만 50조원에 달하고 퇴직소득도 27조원이 육박하지만 이 자료 역시 국세청만 갖고 있어 건보료를 매기지 못하고 있다.

이심기/류시훈/김용준 기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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