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가면(假面) 파티

입력 2013-03-21 17:20   수정 2013-03-21 21:35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미국 신학자 하비 콕스는 가면(假面) 파티의 기원을 15세기 중세 유럽에서 성행했던 ‘바보제(祭)’에서 찾는다. 이 축제는 평민이 마음껏 귀족들을 비웃고 놀려도 되는 행사였다. 주로 신년 초하루에 열렸으며 신학교 학생이나 하급 성직자들도 가면을 쓰고 주교나 신부를 조롱하고 교회를 비난했다. 심지어 대성전이나 궁전에서 열리는 예식을 평민들이 길거리에서 우스꽝스럽게 변형하기도 했다.

하비 콕스는 이런 축제가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한다고 주장했다. 상층민과 하층민 간 소통이 이런 축제를 통해 이뤄진다고 그는 보았다. 하지만 가톨릭에선 1431년 바젤 공의회에서 바보제를 금지했다. 옛날 조선시대 평민들이 탈을 쓰고 놀았던 양반춤 등도 비슷한 사회적 기능이 있었을 것이다.

정작 가면 파티가 번성한 곳은 15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였다. 해상도시 베네치아에는 선원이 많았다. 이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남아있는 주부들은 남자 여자로 나눠 가면을 쓰고 놀았다고 한다. 이후 귀족층에도 이런 가면 파티가 성행하면서 전 유럽으로 퍼졌다. 지금도 브라질 리우카니발이나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니발등 주요 카니발에는 가면 파티가 꼭 열린다.

가면이라는 뜻의 라틴어는 페르소나(persona)다. 인격을 뜻하는 퍼스낼리티(personality)나 사람의 퍼슨(person)은 페르소나에서 유래했다. 인간은 얼굴 자체가 뭔가 숨기고 있는 가면이라는 의미다. 얼굴도 가면인데 여기에다 가면을 쓰면 오히려 내면에 숨겨져 있는 인간의 성욕이나 공격적 성향이 튀어나온다고 한다.

물론 가면 파티의 순기능도 있다. 억압된 본능과 욕구를 발산하는 카타르시스의 기능이다. 그런 카타르시스를 통해 다시 규율이 엄격한 일상 생활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공격 본능을 폭발시키지 않도록 방지하는 안전장치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위선과 가식의 이중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가면을 쓰면 더욱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숨겨진 위선이 바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가면 파티에서 가면이 벗겨지면 그 사람의 운명은 다한 것과 마찬가지라고까지 말했다.

우리 사회 일부 고위층 인사들이 별장에서 가면 파티를 열고 섹스 파티를 열었다는 실로 부끄러운 사건이 연일 화제다. 이들은 전직 대통령이나 유명 배우의 가면을 쓰고 난교(亂交) 파티까지 즐겼다고 한다. 그들이 애써 숨겨왔던 위선이 가면을 통해 튀어나온 것에 불과하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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