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황철주 딜레마'…평생 일군 기업 팔아야 공직자된다?

입력 2013-03-22 09:56  

지난주 화제의 사건 중 하나가 황철주 중기청장 후보자의 돌연 사퇴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빈농의 아들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를 중소기업 정책 수장으로 내정했으나 발표 사흘 만인 지난 18일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중기청장 인사는 ‘박 대통령의 중소기업 배려론과 대기업과의 동반성장론’을 상징했던 만큼 황 대표의 하차는 인사검증의 큰 오점을 남겼다.

#중기청장 내정 사흘 만에 하차 

문제는 18일 황 후보자가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하면서 불거졌다. 바로 황 후보자가 보유하고 있는 주성엔지니어링 주식 처분문제 때문이었다. 황 후보자는 현재 주성엔지니어링 주식 25.45%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다. 시가로는 700억원 규모다.

주식 보유가 왜 걸림돌이 됐을까. 공직자 윤리법이 덫이었다. 공윤법 제14조4항은 ‘본인 배우자 직계존비속 등이 보유한 주식 합계가 3000만원 이상이면 한 달 내에 매각하거나 처리 전권을 타인에게 백지 신탁해야 한다. 백지 신탁한 경우 위임받은 기관은 60일 이내에 처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황 후보자가 중기청장이라는 공직을 맡기 위해 자신이 키워온 기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황 후보자의 보유 주식은 3000만원보다 훨씬 많은 700억원대이기 때문에 황 후보자는 당연히 이 조항에 걸린다.

황 후보자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그는 보유 주식을 맡기면 되는 줄 알았고 매각해야 하는지를 몰랐다고 해명했다. 평생 일궈온 회사를 포기하면서까지 공직을 맡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황 후보자의 설명이다. 그는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공직에 나설 경우 주식을 전량 매각해야 하는 문제를 꼼꼼하게 살펴보지 못해 이런 실수가 있었다”며 “미래 창조경영을 맡겨주신 대통령에게 송구스럽고 국민에게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주식 백지신탁제도가 발목

황 후보자의 발목을 잡은 주식 백지신탁제도는 2005년 도입됐다. 고위 공직자가 직무상 얻은 정보를 자신의 보유주식 거래에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본인이 스스로 매각하거나 금융회사에 맡긴 뒤 60일 내에 처분해야 한다고 동의하면 전혀 문제가 없다. 60일 내 처분도 금융회사가 임의로 처분하게 돼 있다. 원래 주인이 특정인을 살 사람으로 지정해 매각할 수도 없다. 회사가 전혀 엉뚱한 사람에게 팔린다는 의미다.

백지신탁을 해야 하는 고위 공직자의 범위는 재산공개 대상자와 금융을 담당하는 4급 이상 고위 공무원이다. 재산공개 대상자는 국회의원과 장관, 차관을 포함한 1급 이상 공직자다. 중기청장은 차관급이어서 백지신탁 대상자에 포함된다.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임명될 자리와 보유 주식 간에 아무런 직무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주식을 백지신탁하지 않아도 된다. 심사위원회는 국회, 대법원장, 대통령이 3명씩 추천해 9명으로 이뤄진다.

실제로 직무 연관성을 피하는 사례도 있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은 기업과 관련한 정책을 펴지 않는 국회 정무위원회에 소속된다. 경제정책을 주로 다루는 지식경제위원회 같은 상임위원회를 피하는 방식이다. 이들 의원은 보유 주식을 매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황 후보자는 중견기업인 주성엔지니어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중기청장을 맡을 예정이어서 곧바로 문제가 된다. 중기청장에 재직하면서 직접적으로 자기 회사와 관련한 정책을 펴지 않더라도 해당 산업에 도움을 주는 포괄적인 정책을 펴 이익을 볼 가능성을 의심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소기업인에게 불리한 조항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중소기업인이 공직에서 일하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법률이라는 지적이다. 중소기업 경영자 출신인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현행법은 기업인들에게 자신의 회사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수준”이라며 “최소한 기업인 출신 공직자들이 소유권을 지킬 수 있도록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 후보자도 “주식백지신탁 제도가 있는 한 어떤 오너 기업인도 공직을 맡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마디 했다.

#청와대 인사구멍 비판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황 후보자까지 뜸도 들여보기 전에 하차하면서 인사절차와 조율, 검증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의 자존심인 벨연구소의 사장을 지낸 김종훈 씨와 중소 벤처기업의 신화를 일궈낸 황철주 씨를 ‘미래 창조경제’를 이끌 수장으로 발탁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검증이 형편없이 진행돼 헛발질만 한 셈이 됐다.

황 후보자의 경우 백지신탁과 관련한 조항을 청와대가 제대로 알았는지도 의문이다. 검증팀이 기업인을 발탁할 경우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할 공직자 윤리법 규정에 대해 무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측은 본인에게 알렸다고 말하고 있으나 매각사실까지 제대로 통보해주지 않았다. 그저 신탁해야 한다는 정도만 알려줬고, 황 후보자는 뒤늦게 매각의무를 파악해 소동이 벌어졌다는 것은 정설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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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매각…캐나다에선 기업 소유주는 주식 되찾게

'백지신탁'외국에선…

문제가 된 백지 신탁제도는 미국 제도를 본떠 만들었다. 미국은 보유 유가증권이 공직에서 하는 일과 관련된다고 판단하면 임명 뒤 3개월 이내에 증권을 처분하거나 백지신탁하도록 해놓고 있다. 백지신탁해야 하는 보유 주식 규모는 우리의 3000만원보다 더 엄격해 1000달러(100여만원) 이상이면 해당된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때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와 국방장관을 지낸 럼즈펠드는 자신이 최고경영자(CEO)로 있던 기업의 주식을 CEO 사임과 함께 팔았다. 부시 대통령 자신도 텍사스 레인저스 야구단 주식을 매각하고 운영권을 포기했다.

캐나다는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와 단순 주식보유자로 구분해 다룬다. 사기업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 백지운영계약을 할 수 있다. 맡긴 주식을 아예 팔아버리는 백지신탁과 달리 주식을 수탁기관에 맡겨 회사 지분과 연계된 권리를 행사하게 한다. 공직 퇴임 후 주식을 되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직에 있는 동안에는 회사와 관련된 어떤 회의나 정책 결정도 할 수 없다. 평생 일군 기업을 공직 때문에 팔아넘겨야 하는 규제에 숨통을 틔워주는 셈이다.

하지만 이외 경우는 한국보다 훨씬 엄격하다.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해야 한다. 우리나라 행정안전부 소속 주식백지신탁 심의위원회는 직무관련성을 심사해 관련성이 없는 경우 매각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캐나다는 사기업 소유자 외에 공직자가 되려면 주식보유를 꿈도 못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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