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은(중략) 내 아버지 레파토리, 그중에 18번이기 때문에.”
가수 강산에의 노래 ‘라구요’의 가사 일부다. 월남한 실향민 아버지가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부르던 18번, 즉 애창곡이 ‘눈물젖은 두만강’이었다는 노래다. 그런데 애창곡을 왜 1번, 10번도 아닌 18번이라고 부를까.
자주 부르는 노래가 18번이 된 것은 일본 가부키(歌舞伎)에서 유래했다. 에도시대에 등장한 가부키의 원조 배우인 이치가와 단주로의 7대손이 가부키의 노(能)와 노 사이의 막간에 공연하는 풍자소극 중 재미있는 것을 18가지로 정리했다. 이를 ‘교겐(狂言) 18번’이라고 부르는데, 각기 나무상자에 담아 후손에 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말로 18번은 ‘주하치방’이지만 상자를 뜻하는 ‘오하코(おはこ)’로도 읽힌다. 뛰어난 재능을 가리킬 때 오하코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이런 18번이 자주 부르는 노래, 자신있는 특기 등의 뜻으로 전용돼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도 널리 퍼지게 됐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선 대개 뛰어난 사람에게 18이란 숫자를 붙여준다. 중국의 ‘무예 18반’은 검 활 창 등 18가지 무예를 가리키는데, 일본에 건너와선 전설의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무예의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됐다. 또 일본 프로야구에서 18번은 에이스 투수에게만 부여되는 등번호다. 마쓰자카를 비롯해 다르빗슈, 이라부, 와쿠이 등 최상급 투수들의 등번호가 18번이었다.
반면 선동열은 해태타이거즈 입단 때 11번을 달고 싶었지만 대선배인 김성한의 등번호여서 대신 18번을 달아야 했다. 하지만 선동열이 국보급 투수로 성장하며 인기를 모으자 다른 팀들도 앞다퉈 에이스에게 18번을 달아줬다고 한다.
노래방에 가면 18번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18번이 ‘황성옛터’, 노태우 전 대통령은 ‘베사메무초’였다는 것도 유명하다. 그만큼 18번은 우리 언어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지만 가급적 안 쓰는 게 좋다. 한국사람이 정종(일본술 브랜드) 한 잔 마시고 18번 불러보라고 외친다면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국어연구원은 ‘단골 노래, 애창곡’ 등으로 순화할 것을 권한다.
요즘 사회 유력인사 성접대 의혹이 일파만파인 가운데 ‘18번’이 새삼 화제다. 문제 동영상에 등장하는 중년남자가 부른 노래는 가수 박상철의 ‘무조건’이었다고 한다. 이 노래가 엊그제 사표를 제출한 고위 공직자의 18번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진위 여부는 국과수의 정밀 분석으로 가려지겠지만 참으로 낯 뜨겁다. 아이들 볼까 두렵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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