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초·중등학교 교과서는 모두 한글로 만들되 한자는 필요한 경우 괄호 안에 넣는다. 둘째, 모든 교과서는 가로쓰기를 한다.” 1945년 9월 미군정청 교과서편찬분과위원장이었던 외솔 최현배 선생의 주도로 대한민국 어문정책의 큰 틀은 이렇게 정해졌다. ‘직경’과 ‘반경’은 ‘지름’과 ‘반지름’, ‘사사오입’과 ‘능형’이란 말은 ‘반올림’과 ‘마름모꼴’로 각각 고쳐 쓴 것도 이때부터다.
‘한글운동의 선각자’ 최현배 선생은 1894년 울산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한글과의 인연은 16세에 상경해 한성고교에 입학, 주시경 선생의 한글 강좌를 들으면서 시작됐다. “언어는 민족정신의 형성 기반이며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에 감화, 평생을 한글 연구에 바쳤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선생은 32세에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교수가 됐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도 치렀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말본’(1937), ‘한글갈’(1941) 집필을 통해 한글 연구의 체계를 다진 선생은 광복과 함께 문교부 편수국장을 맡아 교과서 편찬에 나섰다. 3년간 ‘한글 첫걸음’을 비롯해 모두 50여편의 교과서를 펴냈다.
선생의 또 다른 업적은 ‘우리말 사용빈도 연구’였다. 타자기 자판에 어떤 글자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통계자료로, 현재 한글자판 모양의 기초가 됐다.
1953년 ‘맞춤법 간소화 파동’으로 공직을 떠난 이후 ‘한글의 투쟁’(1954), ‘나라사랑의 길’(1958) 등 저서를 쏟아내며 우리말 연구에 매진했다.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는 날에도 선생의 손에는 완성하지 못한 ‘옛말 문법’ 책이 들려 있었다. 43년 전 오늘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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